[문화노트] 문학 사랑이냐 … 영향력 행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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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내문예지 대부분은 전국 규모의 종합문예지다. 지난해 현재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29종의 문예지가 발간됐다. 이들 지방문예지 대부분도 문학적 경향을 초월한 시인과 작가를 망라하고, 전국의 서점에 배포된다. 지역문인끼리의 소규모 동인지(同人誌)는 극소수였다.

이 수치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100종 이상의 종합문예지가 정기발행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단다. 본래 문예지 문화는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일본문예지는 소규모 동인지 성격을 띠고 있어 동인 수십 명이 경비를 갹출해 몇백 부쯤 인쇄하는 게 보통이다. 일본의 전국 규모 문예지는 현재 30종이 안 된다.

그러면 한국문학에서 문예지가 인기냐, 그것도 아니다. 왕년의 영광은 잦아든 지 오래다. 계간 '창작과비평'이 호(號)마다 1만5000 부를 찍어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혹독한 경영난에 시달린다. 이런 사정 탓에 문화예술위가 2004년부터 해마다 7억2000만 원어치의 문예지를 사 전국 도서관에 나눠준다.

그런데도 문예지 창간이 줄을 잇고 있다. 올 문예지 봄호 가운데 창간호가 세 권이나 됐다. 양문규 시인이 주간을 맡은 계간'시에'를 비롯하여, 계간 '정인문학', 시 전문 계간 '시인시각'등이다. 뜻밖이어서 알아봤더니 1월 대구에서 월간 '한비문학'이 창간됐고 지난해도 문예지 세 종이 창간됐다.

일단은 환영한다. 발표 지면이 줄어드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문학사랑의 일념으로 사재(私財)를 털어 문예지를 내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한다. 하나 한국문단엔 '문예지문학의 폐단'이란 말도 있다. 일부 문예지의 경직성 또는 순혈주의가 문학으로부터 독자 이탈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만의 하나, 문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서 문예지 창간을 도모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일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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