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누가 주인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누가 주인인가'- 홍신선(1944~ )

골동가게의 망가진 폐품 시계들 밖으로

와르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지금은 제멋대로 가고 있는

시간이여

그런 시간이

인사동 뒷골목 깜깜하게 꺼진 얼굴의

망주석(望柱石)에 모른 척 긴 외줄금 찌익 긋고 지나가거나

마음이 목줄 꽉 매어 끌고 가는

뇌졸중 사내의 나사 풀린 내연기관 속으로

숨어들어

재깍 재까각 가다가 서다가 하는

이 느림이 삶의 주인이다

우리의 정품이다


이즈음의 세상은 쉼이 없다. 당신은 태엽을 돌돌 감아 놓은 시계 같다. 아득바득 앞서 가려고만 한다. 부서진 수레처럼, 민달팽이처럼 가자. 아름다운 후미로 가자. 아침 산책을 즐기듯 그렇게. '손을 놓다'라는 말이 당신에겐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넉넉한 시간을 살자. 가다 서고 얼었다 녹으며 내 보폭과 내 속도로 행선(行禪)하듯 가자. 그래야 주인이다.

<문태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