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빗방울 셋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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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빗방울 셋이'- 강은교(1945~ )

빗방울 셋이 만나더니, 지나온 하늘 지나온 구름덩이들을 생각하며 분개하더니,

분개하던 빗방울 셋 서로 몸에 힘을 주더니, 스르르 깨지더니,

참 크고 아름다운 빗방울 하나가 되었다.


후둑후둑 빗방울 듣더니 다른 곳에 그러나 이웃해 자리를 잡았다. 셋은 표정과 이력이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먼지 속에 시방(十方) 세계가 들어있고, 모든 존재는 하나이면서 전체다. 바닷물의 맛을 알기 위해 바닷물을 다 퍼 담고 바닷물을 다 들이켤 필요는 없다. 손끝으로 바닷물을 찍어 맛보아도 바닷물의 성품을 가히 알 수 있다. 한 방울의 빗방울이 또르륵 굴러 다른 하나의 빗방울에게 간다. 가서 업히거나 껴안는다. 경계가 헐린다. 이것이 소통의 환희다. 하나의 심장처럼 같이 뛴다. 화해하되 지배가 없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가 이러할진대.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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