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히치콕 꼼짝 마” 1400쪽 전기에 그를 가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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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새 떼의 공격을 소재로 한 영화 ‘새’ (1963년)의 홍보용 포스터.

히치콕
원제:Alfred Hitchcock
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1376쪽, 4만8000원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 감독은 하나의 '신화'다. 탄생 100주년이었던 1999년 전 세계가 보인 열광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옵저버'지는 그때 '히치콕은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에 비교할 만한 복잡한 인물''피카소,.스트라빈스키.조이스.프루스트와 같은 반열'이라는 글들을 실었다.

기념비적 열광이 깔린 수사이기는 하지만 현대 영화와 현대 시각문화에 히치콕이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이창''현기증''사이코''새' 등 60여편의 영화를 통해 그는 스릴러 장르, 나아가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 혁신적인 카메라워크와 편집, 음악의 사용으로 공포와 긴장감을 탁월하게 구사한 그의 영화들은 세계 영화학도가 탐독하는 영화교재일 뿐 아니라 정신분석과 철학의 텍스트가 되고 있다.

그에 대한 영화인들의 존경과 헌사는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의 영화들은 무수하게 리메이크됐고, 역설적으로 어떤 리메이크도 원작을 넘지 못해 그의 천재성을 웅변했다. 히치콕에 대한 오마주(존경의 뜻으로 하는 장면 인용)는 젊은 감독들의 통과의례나 관행처럼 됐을 정도다.

할리우드 전기작가 패트릭 맥길리건의 '히치콕-서스펜스의 거장'은 이런 히치콕을 무려 1400쪽의 방대한 양으로 재구성한 저작이다.

작가는 집요한 에너지의 감독 히치콕, 성불능이면서도 금발배우들을 은밀히 욕망했던 자기모순의 인간 히치콕, 검열당국을 솜씨좋게 요리하고 언론플레이에 능했던 수완가 히치콕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이미 전기도 여러 권 나왔고 영어권에서만 200여종의 연구비평서가 나와 있는 히치콕 관련 저작에 또하나를 보탠 셈. 그러나 '지독한 현미경'이라는 미덕 때문에 또 한 권의 전기물이 등장했다는 지적을 피해간다.

책은 영국 청과상의 아들로 태어난 유년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할리우드에 입성하기까지, 60여 편의 영화 연출기, 심지어 히치콕 사후 영화계의 동향 등 히치콕의 모든 것을 더이상 촘촘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대표작들은 작은 챕터 하나를 할애해 일종의 '메이킹 필름'(제작 과정을 찍은 영화)처럼 다루고 있다. 제작을 준비하며 극과 비슷한 인물이나 상황을 찾아가 스스로 체험해보기를 즐겼고 작은 소품 하나의 비사실성도 용납하지 못했던 히치콕의 연출 스타일은 책 전반을 흐르는 작가의 태도와도 상통한다. 한국판 추천사를 쓴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지레짐작이나 과잉해석, 감상주의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지독한 자료조사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히치콕 자신이 영화를 만들 때 가졌던 태도를 정확하게 본받고 있는 것"이다.

책이 홍보문구로 택한 '최종적인 전기'라는 표현은 다소 과도하다 싶지만, 이런 전기가 가능한 출판 문화 자체는 부러움을 갖게 한다. 패러마운트 런던 지사에 근무하던 시절 히치콕이 쓴 단편들, 부록으로 달린 연출작들에 대한 충실한 정보는 자료로서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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