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학분위기 스스로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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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교부의 서울대 학칙개정 승인은 대학의 학생지도와 학사운영을 대학의 권한과 책임에 맡겼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는 개별 대학의 학사운영이나 학생 생활지도 등이 당국의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율에 맡겨졌다는 뜻을 갖는다.
특히 그동안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규정을 학칙에 명문화하도록 해온 학칙준칙을 포기, 지도의 권한과 책임을 대학에 맡기고 성적불량자에 대한 징계도 대학자율에 맡긴 것은 문교부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대학의 면학분위기 조성과 학생의 질관리 방침을 대학에 일임했다는 점에서 일부의 우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문교부는 당초 서울대의 학칙개정안이 자칫 대학 캠퍼스를 정치무대로 만들고, 성적관리를 소홀히 해 대학의 면학분위기조성을 어렵게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승인을 꺼려왔다.
이를 승인할 경우 타 대학이 모두 서울대를 따를 것이란 우려도 겹쳐있었다.
그러나 정치활동 금지조항의 경우 현행 학칙이 학내·외를 포괄함으로써 현실적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없으며, 참정권이 보장된 20세 이상 대학생의 정치활동을 획일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에 부닥쳐 고민해 왔다. 이에 따라 정치활동 금지규정을 학칙에 명시토록 한 규정을 고집하지 않는 대신 서울대가 마련한 「학교의 기본기능 또는 교육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는 금지토록 규정한 학칙을 승인, 이에 따라 교내의 정치적 선동 및 선전과 각종 정치활동은 이 범주에서 대학이 규제토록 했다.
또 학사제명 조항도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의 폐지에 따라 실효가 적어진데다 학생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비교육적 수단이라는 반발이 많아 성적경고제·재학연한제를 통해 학생들의 질관리를 하겠다는 학칙을 승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교부는 서울대 학칙개정을 승인하기에 앞서 전국대학 총·학장세미나, 국립대 교무처장·학생처장협의회 등을 통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광범위한 여론을 들은 뒤 결국 자율화의 대원칙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각각의 실정에 맞춰 학칙개정작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2학기의 학사징계를 미뤄온 많은 대학들은 2월중으로 학칙개정을 서둘러 학사제명 대상자를 구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학칙개정작업에서 대학측이 학생 등의 압력에 개의치 않으면서 각각의 교육여건에 맞고 교육적인 학칙을 만들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정치활동금지 조항삭제가 정치활동 허용으로, 학사제명 폐지가 질관리의 포기 또는 학생수를 늘리는 방편으로 쓰여진다면 대학의 자율화와는 거리가 먼 학칙개정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문교부는 정치활동의 경우 학내에서는 금지토록 명문화하고, 학사징계는 졸업정원제 실시 이전의 기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교육기본법」에서 「법률이 정하는 학교는 특정의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정치교육 기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학사징계의 경우 미국 하버드대·인디애나대 등이 성적불량자에 대한 제적규정을 두고 있다.
문교부는 이번 서울대 학칙개정안에 대한 무수정 승인을 계기로 앞으로는 점진적으로 학칙개정을 승인제에서 사후보고제로 바꾸어간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각 대학이 자율에 따른 면학분위기 유지와 교권확립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학사운영과 학생지도가 당국의 정책적 통제 아래로 다시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자율규제를 해나갈 수 있느냐에 대학자율화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 대학인의 지적이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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