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은 적게, 지원은 크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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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가 삶을 물량적으로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문화는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바야흐로 「문화 경쟁시대」에 돌입, 한나라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GNP와 함께 문화지표를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번 서울올림픽도 그렇지만, 최근의 모든 올림픽은 스포츠 못지 않게 각종 문화행사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여당이 내년 초 발족을 서두르고 있는 문화부의 역할은 중요하며 문화·예술계 및 일반 국민이 거는 기대는 크다.
알다시피 문화부는 종래 문화공보부의 두 기능을 분리시켜 문화와 공보를 별도 조직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부의 발족이 단순한 정부의 기구개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다원화, 전문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영역이 확대되고 그 비중 또한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설 문화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문화의 민주화다.
문화정책은 한마디로 국민의 삶의 가치를 문화로 확인하게 하며 그들의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는 문화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계도」를 앞세워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해 왔다. 이른바 퍼터널리즘 (Paternalism·온정적 간섭주의) 이다.
이 퍼터널리즘은 국민에게 「영양분」만 먹인다는 명분아래 자칫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고 문화 창조자의 창조의 자유, 문화이용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 최근 공윤에 의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발족되는 문화부는 국민을 계도한다는 관료주의적 발상으로 또다시 간섭이나 규제에 연연한다면, 결과적으로 문화의 자정작용을 방해하고 오히려 「지하문화」를 조장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는 문화의 내실화다. 근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대형 문화공간들이 들어섰다. 며칠 후에는 「예술의 전당」중 일부 공간이 개관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대부분 적은 예산과 전문화된 인력의 부족으로 공동화되고 있다. 한 예로 88서울올림픽 미술행사에 소요되는 예산이 90억 원이나 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의 년간 작품구입예산은 1억 원에 불과하다. 문화공간의 확충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공간에 알맞는 내용이 뒤따라야 명실공히 문화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문화혜택의 균등화다. 정부가 문화시설의 확충과 함께 지역간 계층간 격차를 줄 이겠다고 약속한 것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중앙집중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의 55 %가 서울에 집중돼 있고 년간 예술행사의 72%가 서울에서 벌어지며, 출판물의 95%가 서울에서 나온다고 한다. 문화공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머지않아 시행될 지자제에 발맞추어 새로운 지방시대를 여는데 문화부는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전승, 남북문화에 대한 동질성 회복, 저작권 문제 등 국제화시대에 대비한 업무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산하에 있는 각종 기관, 단체를 재정비하여 새 시대에 맞는 역할과 의미부여도 중요한 과제다.
결론은 간단하다. 고도의 문화정책은 간섭은 적게 하고 지원은 크게 넓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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