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은 밝았다…마음의 고향을 승화시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다사다난했던 1987년이 저물고「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새해가 밝았다.
우리로 하여금 숱한 감동과 갈등을 체험케 하면서 1987년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들 마음 속에 깊은 각인을 남기게 한 한해였다.
조그마한 땅덩어리를 그나마 갈기갈기 찢어 놓았는가하면 너희와 우리, 너와 나의 관계를 적으로 내몰았던 해였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누리는 자와 억눌림을 당하는 자들이 서로를 소외시킨 해였다.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순간들이 우리를 비겁하게 만들었고 이 모두가 누구의 잘못이냐고 무섭게 따지고 절규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허탈감에 빠졌고 공허함을 체험했다. 국민적인 자존심이 상처를 임기도 했다.
그러나 새해를 맞으면서 그와 같은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조용한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새해의 대양이 떠올랐다. 부끄럽고 슬펐던 일들을 차분히 반성하고 그 이유를 나 속에서 찾아보자. 나만은 제외된다는 오만을 벗어 던지고 우리의 정신적인 고향을 찾아보자.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이 땅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자.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생각했던가를 찾아보자.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득한 옛날, 수풀이 우거진 신비한 산을 찾게된다. 태백산이라고 불리는 산마루에 신단수가 푸른 잎을 드리우고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발견한다. 바로 신시다.
이 신시의 신단수 밑에서 어느 날 하늘 님의 아들 환웅과 땅의 짐승 곰이 혼례를 했고 단군이 태어났다. 단군의 태어남은 천상과 지상의 결합이며 화합과 사랑의 상징이다. 우리의 시조 단군은 평화와 화합이 엮어낸 아사달의 통치자가 되었다.
단군신화 속에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고향을 찾게 된다. 분열과 투쟁과 파괴에서 시작된 나라가 아니라 화합과 조화와 사람 속에서 한국인·마음의 고향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우리들의 영혼을 찾게 된다.
이제,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꾸밈이 없는 담담한 자세로써, 샘터에서 솟아오르는 조촐하고 맑은 지혜로써, 어리석은 듯 하면서도 변절하지 않는 의지로써 마음의 고향을 승화시키자. 우리의 고향은 그렇게 평화롭고 그렇게 조화로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