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마진 1~2원 남는 '수액세트', 벌레 수액 야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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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 세트 제품에서 날벌레, 바퀴벌레가 나오면서 수액 안전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벌레 수액'은 마진이 거의 없는 저수가 구조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포토]

수액 세트 제품에서 날벌레, 바퀴벌레가 나오면서 수액 안전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벌레 수액'은 마진이 거의 없는 저수가 구조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포토]

최근 수액 세트 제품 2개서 날벌레·바퀴벌레가 나오면서 수액의 안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생후 5개월 된 영아에게 주입하던 수액은 날벌레, 인하대병원서 환자에게 투여하려던 수액은 바퀴벌레로 보이는 이물질이 각각 나왔다. 수액은 혈액을 거쳐 뇌·심장으로 가기 때문에 안전성이 생명이다.

수액세트 제품서 벌레 검출, 환자 불안감 커 #별도 수가 없는 '낮은 가격' 따른 예고된 문제 #최저가 입찰서 100~300원, 경쟁으로 마진 ↓ #"안전 의무 지켜야 하지만 품질 유지 어려움" #인건비 아끼려 해외 제조 많아, 위생관리 취약 #수작업 포장 등에서 제품 벌레 유입 가능성 커 #생산 원가 보장하려면 별도 수가 인정할 필요성 #"가격 숨통 틔워 품질 관리 엄격히 하게 도와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9일 문제가 된 성원메디칼·신창메디칼 제품을 회수했다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수액 백이 아니라 수액 세트이다. 수액을 인체에 연결하는 점적통(약이 천천히 나오게 하는 장치)과 링거 줄을 말한다.

  국내서 일반 수액 세트를 제조·수입하는 업체는 58개이다. 121개 제품이 허가돼 있다. 한 해 약 1억8000만개가 쓰인다. 수액 세트는 별도의 건강보험 수가를 쳐주지 않는다. 수술이나 처치 행위료 안에 포함돼 있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사용한 수액 세트 제품에서 검출된 날벌레. [사진 노컷뉴스]

이대목동병원에서 사용한 수액 세트 제품에서 검출된 날벌레. [사진 노컷뉴스]

  큰 병원들은 일반 수액 세트를 입찰로 구매한다. 다른 제품과 끼워서 구매하기도 한다. 최저가를 써낸 제품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수액 세트 가격이 개당 100~300원으로 떨어진다. 한 대형병원은 1~2년 단위로 수액 세트만 단독으로 입찰해서 구매하며 개당 230~240원에 구매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제조업체는 개당 1~2원의 마진밖에 남기지 못한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 마진이 '전' 단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손해 보는 경우도 있다. 신창메디칼 관계자는 "제조 과정서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하지만 낮은 가격으로 품질을 유지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벌레가 나오면서 수거 조치가 내려진 성원메디칼 수액 세트 제품.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벌레가 나오면서 수거 조치가 내려진 성원메디칼 수액 세트 제품.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벌레가 나오면서 수거 조치가 내려진 신창메디칼 수액 세트 제품.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벌레가 나오면서 수거 조치가 내려진 신창메디칼 수액 세트 제품.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원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위탁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날벌레가 나온 성원메디칼 제품도 필리핀에서 제조해 들여왔다. 반제품으로 국내로 들여와서 한국에서 멸균 작업·박스 포장 등을 납품한다. 이렇게 해서 국산으로 표기해 판매한다.

  해외 위탁 공장도 국내처럼 원료에서 출고까지 먼지·해충 등이 들어가지 않게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하는 GMP(제조·품질관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수작업이 많은데다 클린룸(멸균 시설) 같은 첨단시설이 미흡해 위생이 국내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 수액백 제조 업체의 생산단지에서 자동화 제조 공정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수액 세트 업체는 부분적으로 자동화되고 조립 등은 수작업으로 하는 곳이 많다. [중앙포토]

한 수액백 제조 업체의 생산단지에서 자동화 제조 공정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수액 세트 업체는 부분적으로 자동화되고 조립 등은 수작업으로 하는 곳이 많다. [중앙포토]

  수액 세트를 제조하는 P사 대표는 "해외 공장에서 관리를 소홀히 하면 벌레가 들어가는 걸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제품 포장을 할 때는 거의 수작업에 의존한다. 이 과정에서 벌레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공장에서도 자체 품질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고가의 점검 장비를 쓰기보다 육안 검사에 의존한다. 작은 벌레를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다. 황성주 연세대 약대 교수는 "제조 과정서 GMP 기준을 제대로 지키면 방충·방서망이 설치되니까 쥐는 물론이고 날벌레도 전혀 들어갈 수 없다"면서 "완제품에 벌레가 들어갔다는 건 GMP를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선태 식약처 의료기기관리과장은 "업체가 품질검사를 할 때 자동 검색장치가 있지 않다면 사람이 미세한 이물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샘플 검사의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성원메디칼 관계자는 "벌레가 나왔다는 제품을 국내에서 출고하기 전 조사에선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수액 세트 품질 유지 위해선...

  수액 세트 생산 원가를 보장하려면 별도의 수가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진 1원의 가격에 숨통을 틔워야 품질이 올라갈 수 있어서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수액 세트 제품 수가를 다 인정해주면 불필요한 사용이 늘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수액 세트 제조 업체 P사 대표는 "수액 세트 판매 가격이 올라갈 수 있게 수가 구조를 바꾸고 국내에서 최대한 많은 공정을 진행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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