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6개월 만에 중국전담여행사 '개점휴업'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2일 중국 당국이 자국 여행객의 한국행을 금지한 ‘한한령(限韓令)’ 이후 180여 개 중국전담여행사 중 90%가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해 800만 명 이상을 유치한 중국시장이 불과 6개월 만에 사실상 멈춰버린 것이다.

유커 쫓아 동남아로 간 한국 여행사… #중국전담여행사 직원들 양꼬치집 열어 #올해 3~7월까지, 유커 지난해 대비 231만명 감소 #내국인 해외여행객 늘며, 여행수지 적자 역대 최대

중화동남아여행업협회 김종택 사무총장은 “130여 회원사 중 현재 중국인 여행객을 받고 있는 곳은 10여 곳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단체가 아니라 면세점에서 명품 등을 대리구매하는 따이꺼우(代购)를 핸들링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 많던 중국전담여행사는 어디로 갔을까. 국내 최대의 인바운드(외국인 대상 국내여행 서비스) 여행사인 뉴화청국제관광은 지난 3월 중국 정부의 ‘한한령’ 발표 이후 직원의 절반 이상을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로 내보냈다. 한국으로 발길을 끊은 ‘유커(游客)’를 쫓아간 것이다. 동남아에서 중국인 단체를 고객받아 여행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국내 관광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우성덕(36) 대표는 “해외에 120명이 나가 있다”며 “직원들 월급을 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뉴화청은 지난해 유커 110만 명을 유치했지만, 올해(1~8월)는 10만 명 남짓에 그쳤다.

업계에 따르면 유커 따라 동남아로 간 국내 여행사는 10여 곳에 이른다. 동남아에서 여행업을 하려면 현지 파트너와 손을 잡아야 해 수익은 박해진다. 해외 사업 확장이라기보다는 호구지책에 가깝다는 얘기다. 또 중국전담여행사를 따라 유커 전문 관광가이드도 대거 동남아로 떠났다.

휴업 후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여행사와 직원들도 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전담여행사 대표 A씨는 “지난 3월 이후 직원들끼리 양꼬치집을 차렸다”며 “사정이 딱해 약간의 지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전담여행사 대표 B씨는 휴업 후 건설업에 손을 댔다. B씨는 “직원들 생각하면 추스르고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시장 상황이 암담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3~7월에 외국인 여행객은 51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1만명 줄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 중국인 여행객이 231만명 감소했다.

중국 여파는 동남아로 미쳤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는 지난 3월 한한령 이후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으로 동남아를 지목하고 중국전담여행사을 독려했다. 하지만 시장 규모에 비해 여행사가 과도하게 몰리면서 오히려 가격만 내려가는 역효과로 나타났다. 김 사무총장은 “요즘 한국을 많이 찾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단체의 지상비(항공권을 뺀 여행상품 가격)는 2박3일 기준으로 100달러 정도”이라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유커의 매출 비중이 높은 면세점 업계도 혹독한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3월 이후 평균 매출이 지난해 대비 14% 하락했으며, 중국인 매출은 28% 감소했다. 지난 6월에는 팀장급 40여 명의 임원들이 스스로 연봉의 10%를 반납하기도 했다.

신라·신세계면세점 등도 중국인 매출이 약 30% 정도 떨어졌으며, 중견·중소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의 매출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최근 중국 당국의개별 비자 발급 규제가 더 강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안보 불안까지 겹치면서 일본·동남아 여행객마저 줄었다.

여행업계는 한한령 초기, 유커의 귀환을 ‘늦어도 연말까지’로 내다봤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한 ·중 정상회담이 있었던 7월초에는 ‘8월엔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6개월이 흐른 상황은 더 악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설까지 가도 중국 단체는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더 이상 예측이 무위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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