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수원 광교산 떠난다"는 와전된 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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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초입에 있는 고은(84) 시인의 집 앞. 굳게 닫힌 철문은 열릴 낌새가 없었다. 철문 사이로 보이는 꾸며진 정원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시인과 가족들이 집 안에 있는지, 외출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원시 "광교산 떠난다는 통보 없었다" #시인이 답답한 마음 지인에게 토로한 게 와전 #수원시 "대다수 주민, 시인 거주 원해. 떠나지 않게 하겠다"

광교산 저수지 일대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문제의 불똥이 애꿎은 고은 시인에게 튀었다. 일부 주민들이 형평성 문제를 들며 고 시인의 집을 걸고넘어져서다.

29일 경기 수원시 광교산에 있는 고은시인 자택. 최모란 기자

29일 경기 수원시 광교산에 있는 고은시인 자택. 최모란 기자

광교산 주민대표협의회 소속 일부 주민들은 지난 21일 고 시인의 집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반발했다.

이들은 "주민들은 일대가 개발제한 및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47년간 주택 개·보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수원시가 조례까지 만들어 고 시인에게 거주할 곳을 마련해 줬다"고 주장했다.

고은 시인. [중앙포토]

고은 시인. [중앙포토]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 육성을 위해 경기 안성시에 거주하던 고 시인을 삼고초려 끝에 2013년 8월 수원으로 모셔왔다.
또 시인이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광교산 초입의 한 주택을 리모델링한 뒤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주택은 서재와 작업실, 침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265㎡ 규모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에 고 시인은 지인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 소속 주민들이 건 현수막. 최모란 기자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 소속 주민들이 건 현수막. 최모란 기자

그런데 이번엔 이 일이 와전돼 "고 시인이 수원을 떠난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수원시도 난감해하고 있다.

한 수원시 관계자는 "고 시인이 수원을 떠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적도 없고 그런 의견을 시에 전달한 적도 없는데 계속 언론에 '시인이 떠난다'는 보도가 나와 곤혹스럽다"며 "수원시민의 대다수가 시인이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수원시 주민자치위원장 협의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수원 시민들이 고은 시인을 지켜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협의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문학계 거장 고은 시인을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 보내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며 "광교산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문제는 환경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데 이 문제를 시인에게 돌려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시 입장에선 고 시인이 이런 일에 연루된 것에 죄송할 따름"이라며 "고 시인과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려고 검토하는 과정인데 이런 보도가 계속 나와 시인께서 정말로 떠날까봐 걱정된다. 시인이 절대 수원을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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