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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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04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어머님을 모시고 절에 갔습니다. 헤아려보니 절집을 드나든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공양할 과일을 들고 올라가는데, 다시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시던 어머님이 문득 제 팔짱을 끼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지막이 말씀하셨죠. “내가 큰아들 팔짱을 처음 껴보는구나.”

절 앞마당에는 커다란 불화가 펼쳐져 있고 그 앞 돗자리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앉아서 스님을 따라 열심히 불경을 읊고 계십니다. 평소 같았으면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따라 읊으실 어머님이 웬일인지 그냥 한구석에 조용히 서 계시네요.

보통 법회가 끝나면 대웅전부터 명부전을 지나 새로 지은 법당까지 일일이 돌면서 절을 올렸지만, 이날은 그냥 조용한 합장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어머니를 쫓아다니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웠는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자고 하시니 외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다시 절집으로 가는 길. 어느새 따가워진 햇살에 “왜 모자도 안 쓰고 나오셨어요”라고 짐짓 신경질을 냈더니, “집에만 있다 보니 언제 햇볕을 쬐겠나 싶어서 그냥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덧붙이셨습니다. “봄볕이 좋구나.”

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어머니 팔짱을 끼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다시 해보니 전혀 이상하지 않더라고요. 그날 제가 해드린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목이 메어 말이 안나왔거든요. 어머니와 둘이서 팔짱을 끼고 절집으로 가는 길이 멀어서 좋았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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