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칼럼

세계는 지금 자원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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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자원, 특히 석유자원이 풍족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가 세상을 보는 눈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산업화의 세계화가 속도를 올릴수록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받기 위한 국제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산유국이나 비산유국이나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합종연횡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1월 23일 중국 베이징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한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후진타오 주석이 합의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분에서의 협약은 국제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적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었다. 세계 제1위 산유국인 절대왕정 국가와 세계 제2위 석유 수입국인 공산주의 국가 사이에 맺어진 에너지협약이 지닌 정치경제적 파장은 예사롭지 않다.

그로부터 한 주일 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힌 대체에너지 개발계획, 특히 중동석유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를 향후 20년간 75%나 줄이겠다는 목표 역시 국제정치의 세력균형과 자원경쟁을 염두에 둔 선언이었다. 결국 국가의 안전과 번영은 통상이나 산업기술 신장에 못지않게 석유를 비롯한 자원확보 차원에서 판가름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석유를 넉넉하게 매장하고 있다고 만사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모래에 휩싸인 중동의 사막에서 살아가야 하는 각박한 환경이 신이 주신 불공평의 산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석유자원의 발견은 단숨에 이 지역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역시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석유는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뉴욕 타임스의 논객 프리드먼은 중동에서는 석유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석유의 개발이익을 독점한 지배군주나 독재자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능력이나 국민복지 향상을 억제하면서도 자의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석유가 독재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레바논만이 유일하게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기치로 내건 미국의 관점에서 중동의 석유는 축복이기보다 재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은 인간의, 특히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축복이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며칠 전 카이로에서 만난 아테프 오베이드 이집트 전 총리는 담담하게 지적하였다. 석유가 자동적으로 경제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경제발전에 대한 지도자의 의지와 추진능력, 즉 국민의 참여와 동원을 조직적으로 이끌어 갈 정치력만 있다면 향후 중동지역의 발전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이집트 경제를 포함한 중동경제도 세계경제의 일부로서 원활하게 작동해야만이 정상적인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오베이드 전 총리는 이란이 석유의 외교적 무기화를 시도하는 데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이란의 공세는 중동지역과 서방 간에 이른바 문명의 충돌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비화할 위험마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동 산유국들의 딜레마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과 같은 처지에서 본다면 사치스러운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본지의 '세계는 자원전쟁 중' 등에서 지적된 대로 극렬한 자원경쟁에 휘말리고 있는 국제 세력균형의 전환과정에서 우리도 발 빠르게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자원경쟁에 총체적으로 대비할 책임 있는 사령탑을 확정하는 동시에 지체 없이 과감한 자원확보 정책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예컨대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는 부단한 노력으로 현지 쿠르드족과의 신뢰를 성공적으로 쌓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제적 실리확보, 즉 석유 매장량이 막대한 그 지역에서조차 자원확보 노력이 부진한 듯싶어 걱정된다. 아직도 전쟁상태인 이라크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정부 방침은 매우 타당하나 자원전쟁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위험을 무릅쓴 모험정신과 과감한 결단 없이 승리를 거둔 예는 찾기 힘들다. 우리가 자랑하는 "필승 코리아"의 기질을 중동을 비롯한 자원전쟁의 일선에서 발휘해야 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