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部되기 힘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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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6일 있은 당정협의에서는 국가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달 25일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국가유공자.유족에게 베푼 청와대 오찬에서 약속한 것을 추인한 자리였다.

1998년 장관급 부서에서 차관급 부서로 격하된 이래 부서의 재승격을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 온 보훈처로선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보훈처는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정부 조직 개편을 담당하는 행정자치부가 "부 승격이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보훈처의 승격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행자부는 보훈처만 부로 승격시킬 경우 98년 보훈처와 함께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된 국정홍보처.법제처 등이 반발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운영 지침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보훈처 측은 정부조직 운영 원칙에 따르면 '처'는 부처 간 업무조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적용토록 돼 있는데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국가 통합 제고라는 중대한 정책 목표를 추진하는 보훈 업무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업무량이 많지 않은데 굳이 장관급 독립부서여야 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독립유공자.참전유공자는 물론 6백30만명이 넘는 제대군인에 대한 국가 정책이 소홀히 취급돼선 안된다고 펄쩍 뛴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 20여만명의 독립운동가가 국내외에서 희생됐지만 국가 수립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불과 9천3백여명만이 보훈대상자 대접을 받는 것은 보훈 업무가 소홀히 다뤄진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한국은 근현대사에서 식민지와 한국전쟁.월남전쟁 등 많은 비극을 겪었고 현재도 분단의 비극을 겪고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 유달리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훈처의 승격 문제는 '광복절에 걸맞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철희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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