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모처럼 살아나는 내수의 불씨 살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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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해 백화점 매출이 3년 만에 증가세로 반전했다. 대형 할인점은 물론 재래시장의 매출액도 늘어났다. 올해 유통업계의 설 대목 매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모처럼 내수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내수가 회복 신호를 보내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다. 올해는 대폭적인 수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환율부터 부담스럽다. 미국의 경제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는 달러 가치의 고평가를 시정하려면 원화가 835원 수준까지 절상돼야 한다고 최근 한 보고서에서 주장했다. 이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화 강세는 추세이고, 이는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건설 투자 역시 요즘의 부동산정책을 볼 때, 최근 3년의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시장은 연초부터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역조건은 더욱 나빠질 것이고, 설사 국내총생산이 정부 기대대로 5% 성장한다 해도 국내총소득 증가율은 크게 늘지 못할 상황이다. 현 추세라면 올해도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일한 희망인 내수 회복의 불씨라도 소중하게 살려가야 한다. 정부도 "민간소비가 증가세를 이어가야 올해 목표인 5%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간소비가 증가하기 위해선 우선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소비를 늘려야 한다. 그 효과가 아래로 퍼지면서 전체적으로 소비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야 고용도 늘고 영세 자영업자들도 허리를 펴게 된다. 이건 옳고 그름, 혹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위화감의 확대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경기가 선순환 구조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소비심리의 확산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도처에 잠복해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의 입이다. 여전히 잠복 중인 증세 논의나, 부동산 공개념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 검토 주장 같은 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지방 선거와 대권 후보 경쟁을 앞두고 선명성 경쟁을 위한 과격한 공약들이 얼마나 더 쏟아져 나올지 모를 형국이다. 이래선 모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던 고소득층의 주머니조차 다시 닫히거나 해외로 쏠리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간 비슷한 논란들이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기억해야 한다.

내수 회복은 이제 갓 시작이다. 지금으로선 경제 회복과 일자리 늘리기에 우선하는 정치 공약은 있을 수 없다. 모처럼 살아난, 어느 때보다 절실한 내수 회복의 불씨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경제운용에 안정감을 심어줘야 한다. 소비심리만큼 상처받기 쉬운 것도 없다는 점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