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를 접수할 그대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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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9면

작금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보고 있자면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굳이 ‘문화융성’을 국정 지표로 내걸어놓고 뒤에서 몰래 ‘문화 획일화’를 일삼다 딱 걸렸다. 무려 1만명에 가까운 예술인이 이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렸다니, 거꾸로 가는 세상에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가로서의 당연한 액션을 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포함됐다는 얘기다. 더 우스운 건 이 검열 메커니즘이 치밀하게 작동한 것 같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명단에 오른 적잖은 이들이 지원을 받기도 했다니, 이처럼 엉성한 리스트에 들지 못한 예술가들이 오히려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왜 내 이름은 없나. 의문의 1패”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 문건을 만든 주인공들이 코미디를 미스터리로 역전시킨다. 평소 남다른 문화 사랑과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을 어필해 왔던 조윤선 장관이 왜 그랬을까. 오페라를 사랑해 동호회까지 만든 그다. 미술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그의 책을 읽으며 감탄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때마침 공연중인 뮤지컬 ‘데스노트’가 떠오른다. 일본 인기 만화가 원작으로, 톱스타 김준수의 군입대전 고별 공연이다. 2015년 초연 때만해도 사신이 장난으로 떨어트린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히면 죽게 된다는 지극히 만화적인 판타지가 무대의 소재로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역시 공연은 생물인 걸까. 그새 급변해 버린 사회상과 맞물려 큰 공감을 주는 무대가 됐다. 굳이 ‘이게 나라냐’ 등의 애드립을 더하지 않았더라도,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자의 살생부에 오르면 끝장’이라는 설정 자체가 충분히 시의적이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살생부를 접수한 자가 평범한 시민이란 사실이다. 법의 한계를 고민하던 정의로운 고교생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자 ‘정의의 이름으로’ 흉악범들을 처단해 나간다. 추종자들이 생기자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안하무인이 되고, 수사망이 좁혀오자 무차별 살인마로 변해간다. ‘악마와 싸울 때 악마처럼 변해가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여기 또 한 편의 뮤지컬이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불거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공연중인 창작뮤지컬 ‘경성특사’다.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 ‘비밀결사’를 일제 강점기 경성으로 옮겨온 이야기다.


1929년 경성 한복판, 취업난과 조선인 차별로 괴로워하던 두 젊은 남녀가 우연히 독립운동가들을 일망타진하려는 친일파 세력이 찾고 있는 비밀문서를 찾아나서게 된다. 조선의 명운이 달린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비밀문서의 소재와 함께 결국 밝혀내야 하는 건 친일파 세력의 배후에 있는 미스터리의 인물 ‘김철수’의 정체다. 마치 실체는 있지만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블랙리스트의 기획자를 밝혀내야 하는 특검의 임무와도 같다. ‘아무도 믿지 않고 모든 걸 알고 있는 제일 무서운 사람’ ‘어디든 있고 누구도 될 수 있는 미지의 인물’ 김철수는 대체 누굴까.


결국 김철수는 어딘지 수상해 누구나 예상했던 그 사람으로 밝혀진다. 그런데 미스터리의 인물에게 하필 ‘김철수’라는 익명에 가까운 이름을 붙인 것이 재미있다. ‘부와 권력만 손에 넣으면 개돼지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기회주의자 김철수는 ‘어디든 있고 누구도 될 수 있는’ 평범한 우리들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다 ‘데스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처럼.


블랙리스트 주인공의 미스터리도 곧 밝혀질 터다.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역전된 후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새 버전의 데스노트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악마를 물리치고 더 나쁜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니체의 경고를 평범한 우리부터 잊지 말아야겠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씨제스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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