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탐탐 패권 노리는 프랑스… EU 탈퇴 앞둔 영국, 나토 주도권도 잃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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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탈퇴로 국제적 고립 위기에 처한 영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주도권마저 잃을 처지가 됐다. 영국 더타임스는 10일(현지시간) “나토 내 군사력 2위인 영국의 역할을 다른 유럽 국가들이 탐내고 있다”고 영국의 국방·안보 씽크탱크 ’로열 유나이티드 서비스 인스티튜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미·영 동맹 중심의 서방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다.

영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지탱하는 미국의 맹방이다. 지난해 영국의 나토 국방비 분담금은 600억 달러(약 71조 7000억원)로 28개 나토 회원국 중 미국(6500억 달러)에 이은 2위였다. 영국은 2003년 이라크전 때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로 파병했고, 2014년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에 대한 EU 제재를 주도했다.

그러나 영국과 서유럽 내 패권을 다투는 국가들은 이같은 질서를 불편해 했다. 특히 프랑스가 그렇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나토에 불만을 갖고 샤를 드골 대통령 때인 1966년 나토에서 탈퇴해 2009년에야 복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영국의 지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프랑스는 해군 장성과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포함된 비공식 특사단을 미 워싱턴에 파견했다. 프랑스의 군사력은 영국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프랑스가 영국의 EU 탈퇴 뒤 미국의 특수 동맹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신문은 이들이 “영국이 빠진 EU에서 동맹으로서 능력을 가진 국가는 프랑스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9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불참한 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도 영국을 제외한 ‘유럽군’ 창설이 거론됐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유럽군 창설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로 ‘유럽군 지휘부’ 설립을 제안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의 이해·가치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연합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영국은 아직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물러난 아담 톰슨 전 나토 주재 영국대사는 “영국이 주도적 지위를 잃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영국 국방부도 “나토에서의 역할을 포함해 유럽 안보를 위한 주요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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