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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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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환 투기꾼에게 말로 엄포를 놓는 '구두(口頭) 개입'은 양치기 소년과 같다. "늑대가 나타났다"를 남발하면 거짓말쟁이로 찍혀 약효가 떨어진다.

구두 개입의 세기적 실패작은 영국에서 있었다. 월가의 투자 귀신 조지 소로스가 '환투기의 황제'로 등극한 것도 그때다. '검은 수요일'로 불리는 1992년 9월 16일. 소로스에게 이날은 영국은행의 항복을 받아낸 영광의 날이었지만, 영국으로선 파이낸셜 타임스의 말마따나 '25년래 영국 정치.경제사에 최악의 치욕'이었다.

당시 시장에선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를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반대로 갔다. 9월 12일. 존 메이저 총리는 "모든 투기적 공격으로부터 파운드화를 방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강력한 구두 개입이었지만 투기꾼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파운드를 더 많이 내다 팔았다. 나흘간 230억 파운드가 동원됐지만, 파운드화 폭락을 막을 수 없었다.

16일 오전 11시. 버티다 못한 영국은행은 금리를 10%에서 12%로 인상했다. 소용없었다. 오후 2시15분. 다시 15%로 올렸다. 하루 만에 금리를 두 번 올린 것은 영국은행 300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미 백약이 무효였다.

오후 6시. 영국은 결국 파운드화 방어를 포기했다. 영국 정부는 33억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고, 소로스는 일주일 만에 10억 달러(약 1조원)를 벌어들였다.

97년 10월 27일 서울. 외환위기 때도 구두 개입이 남발됐다. 당시 시장에선 원화의 평가절하를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로 갔다. 정부는 "환율 930원대를 꼭 지킬 것"이라며 "환투기자 명단을 공개하고 강력 제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원화가치는 되레 더 빨리 떨어졌다. 이틀 뒤 정부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연초부터 환율이 심상치 않다. 달러당 980원대가 깨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 총재의 구두 개입이 도마에 올랐다. 총재의 발언으로 시장이 더 요동치는 바람에 환율 방어 비용이 더 들어갔다고 한다.

환투기 옹호론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환투기 세력은 투기 대상 통화가 낮을 때 사들이고 높을 때 팔아 결과적으로 환율 안정에 기여한다"고 했다. 정부는 투기꾼과 반대로 움직인다. 시장은 이때 더 믿을 만한 쪽을 택하게 마련이다.

투기꾼이냐 정부냐 시장의 선택이 궁금하지만, 걱정이다. 정부가 이미 "늑대가 나타났다"를 너무 자주 외친 것은 아닌지.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