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멕시코 등 11개 국가도 “원유 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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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비(非)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도 원유 감산에 합의했다.

비OPEC 국가 15년 만의 합의
공급과잉 조정, 유가 오를 듯
사우디 “합의보다 더 줄일 수도”

1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OPEC와 비OPEC 회원국이 원유 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15년 만의 감산합의다. 이번 산유국간 결정으로 지난 2년 남짓 하락세였던 유가는 당분간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비회원국인 러시아의 알렉산더 노박 석유장관은 1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마친 뒤 “역사적인 사건이다. 국제 원유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14곳의 OPEC 회원국들은 지난달 30일 하루 평균 120만 배럴의 원유를 덜 생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 캐나다는 빠졌지만 러시아와 멕시코 등 OPEC에 참여하지 않는 11개 국가가 감산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공급과잉 상태에 시달리던 시장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감산에 참여하기로 한 비 회원국들의 감축량은 하루 55만8000배럴. 내년 1월1일부터 6개월간 적용된다. 세계 시장 60%를 차지하는 산유국 간의 전례없는 감산 합의로 내년부터 줄어들게 되는 원유 공급량은 약 175만8000배럴에 달할 예정이다. 올해 4분기 기준 넘치는 공급량(일 평균 123만 배럴)을 감안하면 공급과잉 상태가 내년 상반기에 해소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 발 더 나갔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석유장관은 이날 “합의한 것보다 더 생산량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이 감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져 ‘시장 안정화’에 쐐기를 박았다.

에너지 에스펙츠의 암리타 센 수석연구원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라고 평가했다. 그는 “OPEC이 감산을 과연 이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우디가 시장 재균형(rebalance)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유국들은 그간 시장 점유율을 놓고 출혈경쟁을 벌여왔다. 미국이 값싼 셰일(shale)오일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자 산유국들은 생산량을 늘려서라도 점유율을 지키려 들었다. 생산은 수요를 앞질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경기마저 둔화되면서 수요는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20달러대까지 꺼졌고,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재정적자에 빠지기 시작했다. ‘치킨게임’양상이 이어졌지만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시장의 오랜 카르텔인 OPEC이 과연 산유국들의 감산을 이끌어내겠느냐에 대한 회의감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우디가 시장 우려를 딛고 OPEC 감산합의와 비 OPEC 회원국까지 설득에 성공하면서 사우디는 체면을 살리게 됐다.

블룸버그는 사우디 리더십 부활에 대해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대로 올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 규모는 970억 달러(약 108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가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유가 수준은 배럴당 79달러다. 지난 9일 기준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51.5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갈 길이 멀다. 블룸버그는 오는 2018년 아람코의 기업공개(IPO)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도 합의 도출을 통해 유가를 밀어올려야 한다는 사우디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달 OPEC의 감산 이후 국제 유가는 약 15% 뛰었다.

핑크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셰일오일이 문제다. 유가가 60달러 이상으로 뛰기 시작하면 생산원가가 60달러 대인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난다. 사우디가 감산을 주도했지만 미국이 가장 먼저 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OPEC이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미국의 원유와 가스 생산이 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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