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의 의미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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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31면

자전거를 파는 상점 중에 얼마 전부터 ‘삼천리’라는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이 단어와 마주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가다 졸음에서 깨면서 창문을 내다봤다. 그 때 차창 밖 서울 이문동 길의 낡은 집들은 별로 볼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빨간 바탕에 하얀 색으로 그린 ‘삼천리 자전거’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삼천리가 얼마나 멀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외국인인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삼천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개념이 안 잡혔다.


한국의 구글인 네이버에서 검색해 봤다. 삼천리의 정확한 의미와 이 단어가 한국인들에 주는 느낌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검색에서 알게 된 의미는 놀라웠다. 삼천리란 말에는 한국 전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즉 대한민국만 아니라 북한까지 포함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삼천리는 북한의 함경북도에서 남한의 제주도 남쪽 끝까지 거리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함경북도가 러시아와 붙어있기 때문에 삼천리는 러시아 연해주 남쪽에서 제주도 남쪽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꽤 먼 거리다. 가능해지기만 한다면 호기심이 풍부한 한국인들은 분명 금강산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삼천리 여행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삼천리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될 상황이다. 현재로는 삼천리의 거리를 여행하려면 아마도 남한을 두 바퀴 정도 돌아야 한다. 참 아쉽다. 삼천리의 의미를 알고 난 이후 삼천리 자전거 간판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슬픈 감정이 생겨났다. 왜 상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보면 삼천리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 같다.


나는 그 그리움을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통일된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다. 남북 분단 상황은 한민족의 마음속에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한국인들은 언젠가는 삼천리 한반도가 통일될 날을 그리워 하고 있다. 둘째는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행을 좋아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을 여행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셋째는 멀리 있어 안 가본 것을 구경하고 체험하고 싶은 그리움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사람들이 삼천리란 단어에 어떤 그리움을 느낄지는 중요하지 않다. 삼천리란 단어는 앞을 향해 이동한다는 느낌을 준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잘 못 참는 한국인들의 성격에도 어울리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삼천리 한반도 길을 자전거로 여행할 날이 오길 희망해본다.


이리나 코르군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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