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80일 새누리 이정현호…‘최순실 태풍’에 좌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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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분주한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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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의 ‘이정현호(號)’가 취임 80일 만에 ‘최순실 태풍’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청와대의 위기가 친박계 당 지도부로 고스란히 옮겨붙은 모양새다.

친박 지도부 사퇴, 비대위 요구 봇물
박 대통령 탈당 요구도 점점 거세져

26일 새누리당 내에선 지도부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 쏟아졌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대통령 리더십의 공백은 국가적 위기”라며 “새누리당은 하루라도 빨리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비대위원장과 비대위가 국가 리더십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박계 이종구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친박 지도부가 너무 청와대를 추종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는 청와대와 선을 그어야 한다”며 “지도부가 대오각성해 (사태 수습에) 필요하다면 사퇴하고, 비대위를 구성하든지 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전날보다 커졌다.

나경원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 “당을 추슬러야 하지만 대통령께서 먼저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결국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모습, 그 수순(탈당)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를 소집했다. 이 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최고위는 대통령이 청와대와 정부 내각에 대폭적 인적 쇄신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이번 사태와 직간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지체 없이 교체돼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청은 회의에 배석한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달됐다. 최순실씨에게 연설문이 사전 유출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이틀 만에 나온 조치였다. 회의에선 지도부 사퇴 문제도 거론됐지만 청와대의 인적 쇄신 요구가 관철됐는지를 지켜본 뒤 거취를 결정키로 결론이 났다. 이 대표는 “청와대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도 그땐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오후 의원총회에선 친박 지도부를 겨냥한 비박계의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신돈이 공민왕 때 고려를 망하게 한 사건, 괴승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 때 제정 러시아를 망하게 한 사건에 버금간다.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당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박인숙 의원), “우리의 결기를 보이기 위해 대표가 총대를 메시라. 야구로 치면 주장인데 희생 타자가 되어주시라”(정양석 의원)는 것이었다. 하태경 의원은 이 대표에게 “최순실을 데려오라. 당장 리더십 위기인데 감당할 수 없으면 감당 못하겠다고 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김명연·박대출·이우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은 줄줄이 나와 “당 지도부 자리를 노리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왜 ‘뻑’ 하면 당 지도부에게 책임을 묻느냐”, “대통령이 평소 의지하던 지인과 대화한 것뿐”, “지금은 국민이 아니라 언론과의 싸움”, “누구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할 대통령을 걱정하는 여론도 있다”는 취지로 박 대통령과 이 대표를 감쌌다.

이충형·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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