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진해운 알짜 자산 지키기에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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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한진해운의 알짜 자산 지키기에 나섰다. 자산 실사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11일 채권단과 한진해운에 따르면 법원은 ㈜한진이 인수하기로 했던 한진해운의 아시아 8개 항로 영업권에 대해 자산 보전 처분 명령을 내렸다. ㈜한진이 621억원에 사들이기로 6월 계약한 자산으로, 이달 말 최종 인수할 계획이었다.

법원의 한진해운 자산 보전 처분 명령으로 항로 영업권 매매 절차는 법정관리 기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은 다음달 28일 나오는 삼일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를 토대로 11월 25일까지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법원은 실사보고서와 회생계획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11월 25일 이후 회생 또는 청산 중 한쪽을 선택한다.

법원이 자산 매각에 제동을 건 이유는 한진해운의 최종 운명이 결정될 때까지 최대한 회생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해상법) 교수는 “회생에 방점을 뒀다기보다는 회생할 경우 영업에 필요한 물적자산과 무형자산을 유지하자는 차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한진그룹 계열사의 한진해운 ‘알짜자산 빼돌리기 논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지난해부터 자금 지원 명분으로 계열사를 통해 한진해운의 자산을 매수했다. ㈜한진이 매수한 자산만 해도 1년여간 아시아 항로권을 비롯해 총 2351억원 어치다. 또다른 계열사인 한진칼도 올해 6월 한진해운의 미국ㆍ유럽 상표권을 742억원에 사들였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빼면 남아 있는 자산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금융권에서는 “한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예상하고 우량 자산을 인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경우 한진해운이 그간 계열사와 했던 주요 자산 매각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정관리 기업의 자산이 제 값에 팔리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법정관리인을 통해 행사하는 ‘부인권’이 그 수단이다.

㈜한진이 지난해부터 매수한 부산 한진해운신항만(지분 50%), 경기도 평택컨테이너터미널(지분 50%), 베트남 탄캉카이멥 터미널 등이 대표적인 매각 자산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인이 자산매각에 대해 부인권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자산은 다시 한진해운 소유로 돌아오고, ㈜한진은 자산의 주인이 아닌 채권자 신분이 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원이 한진해운의 부실 발생 시기를 넓게 잡는다면 2014년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계열 분리 후 보유한 유수홀딩스도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기류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애초 채권단은 한진해운 청산을 전제로 선박ㆍ인력 등의 자산을 현대상선에 흡수합병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법원의 적극적인 행보로 회생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금은 자금 지원이 어렵지만 회생으로 결정이 나면 한진해운의 기업 정상화를 위해 법정관리기업대출 형태로 한진해운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일 긴급 수출 점검 회의를 열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기업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주 장관은 “화물이 어디에 있고 언제쯤,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막힌 곳 없이 화주에게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KOTRAㆍ무역협회 직원을 현지 거점 항만에 보내 한진해운 해외지사와 운항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미국 연방법원은 9일(현지시간)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를 내렸다. 이에 따라 한진그리스호가미국 서부 롱비치 항만에서 하역을 했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10일 한진해운 보유자산인 롱비치터미널(지분 54%)을 담보로 취득하는 조건으로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이태경ㆍ김민상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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