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선생님 된 엄마, 출세했다고 딸이 좋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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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결혼이민여성 오건금(왼쪽)씨는 딸과 둘이 있을 때는 중국어만 쓰기로 딸과 약속했다고 한다.

“엄마가 외국어 선생님이 됐다고 딸이 너무 좋아해요!”

12년 전 시집온 중국인 오건금씨
구미 상모초교 등 3곳 강사 맡아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중국계 결혼이민여성 오건금(43)씨는 만나자마자 딸 이야기부터 꺼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날 고등학교 2학년인 딸 박예음(18)양이 “(엄마가) 이제 선생님이 됐으니 출세했다. 친구들에게도 자랑했다”고 귓속말을 건넸다고 한다. 오씨는 “그래서 잘 가르쳐야 하니 어깨가 더 무겁다”고 말했다.

오씨는 중국 장쑤(江蘇)성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경북 구미시에서 12년째 살고 있지만 중국동포가 아니어서 아직 한국어 발음이 서툴다. 오씨는 지난해 구미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이어 올해는 상모초등학교와 진평초등학교 등 세 곳에서 이중언어 강사가 됐다.

그는 재밌는 강의를 하려고 학생들 반응을 꼼꼼히 살핀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가 6, 8, 9라는 얘기를 꺼냈더니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군요. 6은 ‘물 흐르듯 순조롭다’, 8은 ‘돈벌다’, 9는 ‘영원하다’는 글자와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강의 때 이런 내용을 종종 써 먹는다. 오씨는 “중국어를 배워두면 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그가 받는 강사료는 1시간에 2만5000원. 세 곳을 합치면 한 달에 100만원쯤 된다. 오씨는 경북도가 추진 중인 ‘결혼이민여성 이중언어 강사 일자리사업’을 통해 선생님이 됐다. 경북도는 올 초 도교육청, 삼성 스마트시티와 손잡고 1월부터 3회에 걸쳐 중국어 52명, 베트남어 39명 등 모두 126명의 이중언어강사를 양성했다. 결혼이민여성 가운데 모국어뿐 아니라 한국어를 잘하는 이들이 많아 외국어 교육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 가운데 62명이 먼저 경북지역 초·중·고등학교 방과후 교실 등 170곳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출신국 언어는 중국어·베트남어·영어(필리핀) 등 세 가지다. 경북도는 이 프로그램으로 결혼이민여성에겐 경제적 자립 기반을, 학생들에게는 생생한 외국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구미=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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