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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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성형외과 의사들에 따르면 성형수술 중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코 수술이다. 미국의 통계지만 2001년 전체 성형수술 8백50만건 중 약 16%가 코 수술이다. 연예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형수술에 가장 민감하다 할 수 있는 할리우드나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도 데뷔 전후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부분이 코라고 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코를 손대는 것일까. 문화학자들은 그만큼 코가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유럽사에서 코는 성적인 농담의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피노키오의 코' '클레오파트라의 코'처럼 역사.문화적 상징과 연관된 비유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작은 코, 납작한 코, 지나치게 큰 코 등을 가진 사람들은 조롱과 열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코 성형은 이런 분위기에서 발달했다. 즉 신체를 변형시켜 바깥 문화권 인물로 밀려나는 위기를 모면하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샌더 길먼의 '성형수술의 문화사'를 보면 이런 분위기가 득세한 때는 유럽에서 매독이 크게 유행하던 16세기다. 매독의 후유증으로 코가 내려앉은 남성들이 많아지자 당시 사회에서는 코가 내려앉은 남자들을 모두 매독 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도덕적.종교적으로 사실상 파문을 당했다.

때문에 이들에게 코를 높이려는 행동은 모든 기득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결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부림이 성형 코 수술을 발달시켰다. 시대가 변해 19세기 이후 국제무역이 활성화하자 코 높이는 다른 문화권, 다른 인종, 다른 계급을 차별화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동양에서도 코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개국시조나 문중시조를 비조(鼻祖)로 칭할 정도였다.

동양사회에서 코의 중요성을 강조한 소설 중 유명한 것이 일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단편소설 '코'다. 그는 1916년에 발표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젠치 나이구를 통해 남들 눈에 보기 아름다운 코가 아닌 원래 있는 그대로의 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동양, 특히 한국에서도 성형이 크게 유행하고 각광받고 있다. 서양의 코 성형이 기득권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됐다면 요즘 유행하는 코 성형은 밀려나기보다는 끼어들려는 목적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높다. 이 또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이동성, 계급.계층적 모빌리티 때문인가?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