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높여도 「결전」은 미룰 듯|「특위안」다룰 운영위 여야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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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의 예결위농성사태가 약12시간만에 끝나고 정국의 초점은 다시 운영위의 개헌특위로 돌아오게 됐다.
예결위에서 여야가 밀고당긴 근본원인도 실은 개헌특위의 처리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질의 연장이라는 약한 명분을 놓고 신민당이 농성까지 벌인 것도 개헌특위안의 심의를 앞둔 전초전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개헌특위안 심의가 27일 드디어 재개되기는 했지만 예상했던대로 찬반토론을 하는 단계에서 심의를 중단한 채 다시 운영위에 계류될 전망이다.
개헌특위안에 대해 여야가 심의절차를 끝까지 밟아 표결처리를 하지않고 그대로 두어두는것은 결전을 유예하겠다는 양측의 속셈이 서로 맞아 떨어지고 있는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예산안통과의 법정시한인 12월2일을 앞두고 예결위나 국회본회의에서 있을것으로 예상되던 풍랑도 그리 거칠지는 않을 것으로 일단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25, 26일 이틀에 걸쳐 일어났던 예결위의 신민당의원 농성사건과 그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럽고 변덕스럽다고까지 할수있는 여야의 태도도 따지고보면 개헌특위안 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여야의 내부사정을 드러내주는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당의 반대로 부결이 뻔한 개헌특위안을 끝까지 관철할수 없는게 신민당의 고민이다. 아직 원외투쟁의 분위기도 조성돼있지 않고 당내결속도 안되어 있는 여건에서 무턱대고 장외로만 뛰쳐나갈 수는 없게 되어있다.
장외로 뛰쳐나간다는 것은 곧 극한대결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직 원내에 미련과 기대를 두고싶은 것이 야당의 속마음인것 같다.
그러나 아무 소리않고 주저앉아 있자니 국민에 대한 공약이 짓누른다. 결국 나가기도, 앉아있기도 난처한 어정쩡한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 투쟁의 모습을 보이자니 예결위의 총리출석, 정책질의의 연장 등 어디에서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로인해 제5공화국 들어서는 처음으로 국무총리를 예결위로 끌어내 정치공세를 펴는 부수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다.
여기에 대처하는 여당의 반응역시 지나칠정도로 과민하기는 마찬가지다. 호헌의지를 천명하기 위해서는 당장 개헌특위안을 부결시켜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논의의 원내수렴을 주장해온 처지에서 원내에서 개헌논의를 모조리 봉쇄한다면 결국 야당을 장외로 내몰았다는 비난을 면키어렵다. 개헌논의는 최대한으로 억제하면서 예산을 심의해 나가야하는데 어차피 야당이 한바탕 소란을 피울 것은 분명하므로 걸핏하면 단독처리, 강행통과를 휘두를 채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야입장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로 여야가 충돌을 일으킬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곁국 개헌특위를 어떤 방식으로 밀어붙이느냐는 야당의 전략에 남은 국회일정의 기상이 좌우될 판이다.
신민당은 이민우총재가 『특위가 관철안되면 나부터 드러눕겠다』고 다짐했고 또 개헌투쟁의 원외확산 엄포용으로 중앙상무위까지 소집해 놓았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전단을 펴나가느냐는 것이 문제인데 개헌특위안이 다뤄지는 운영위에서 불을 붙여 예결위와 본회의장으로 이어가는 작전으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즉 운영위에서 찬반토론을 계속 벌여나가면서 개헌특위 구성을 목청껏외치고 이어 토론을 중단한채 특위구성을 예결위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재무위의 조세감면법개정안통과, 예결위의 계수조정과 예산안을 통과시킬 예결위 전체회의 그리고 예산안통과의 법정시한인 마지막 본회의가 일단 확전장이 되고 그때가서 다시 농성과 단상점거 등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신민당의 투쟁방법이다. 민정당측은 신민당이 개헌특위를 계류시키자면 계류시켜주고 끝까지 표결처리하자면 예산통과후에 표결처리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신민당의 요구는 개헌특위안의 최종적인 표결처리가 아니라 민정당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는 특위를 구성해 내라는 것이기 때문에 작전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민정당이 하자는대로 해주겠다고 하므로 거기에는 극한적으로 저지해야할 표결과정도, 몸으로 막아야 할 강행통과절차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민당으로서는 특위구성요구를 예산안과 결부시켜 최대한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야간의 정치절충을 통해 당장 이번 국회는 아니더라도 내년쯤 헌법연구특위 같은것은 구성할수 있다는 희미한 언질이나마 얻어낸다면 가장 큰 성과를 거두는 것이 될 것이다.
신민당이나 야권에서는 그와같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여건의 변화가능성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눈치다. 동교동이나 상도동측 모두가 이번 국회를 최후의 결전장으로 보는것 같지가 않다.
한반도정세의 변화가능성이나 88년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비하는 여권내의 움직임이 좀더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조성될 수도 있는 신축성의 폭에 나름대로의 변화가능성을 읽어보겠다는 생각들이다.
야당측은 이같은 속셈에서 도처에서 국지전을 전개하고 장외투쟁전개의 엄포를 놓으면서 여당측의 의중을 타진해 볼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신민당측이 제안해 놓고 있는 중진회담이라는 것이 현재의 민정당 구조로 볼 때는 전혀 가망성이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나름으로 고위정치절충을 모색하는 시도로 일단 받아들여질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번 국무총리의 예결위출석과정에서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 등이 적극적으로 보여준 유연한 태도나 국회를 원만하게 마무리지으려는 이재형국회의장의 노력이 어느정도나마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런 절충에서 개헌특위자체에 민정당측의 어떤 융통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전반적인 정세의 흐름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을 통해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계기를 갖고 보다 신축성있는 자세를 취할수 있도록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러기위해서도 원내에서의 논의의 여지를 남겨둘 필요를 여야모두가 느끼고 있고 그게 정국의 안전판구실을 하는 것 같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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