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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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달러값은 일본화로 한때 2백11엔 선까지 떨어졌었다.
엔화평가에 대해서는 일본안에서도 논의가 분분하지만 이런 하락세가 쉽게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스미다」(징전) 일본은행총재도 엔화값이 달러당 2백엔 수준까지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일본의 유수 지역회사들 역시 미·일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물론 「신일본제철」 같은 거대 수출메이커는 비록 작은 목소리이긴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부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비명을 올리고있다.
지난 며칠의 엔화시세커브를 보면 일본업계의 반응은 착잡할 만도 하다. 지난 9월15일까지 만해도 엔화는 달러당 2백45엔대였다. 금년정초엔 2백50엔선. 그것이 지난 9월15일 G5 (서방선진5개국) 뉴욕회의이후 하루아침에 치솟기 시작해 10%도 넘게 급제했다.
그러나 5일 서울에서 다시 회동한 G5대표들은 아직도 달러가치가 20정도 고평가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지난번 뉴욕회동이후 일본의 외환시장에서 나왔던 예측대로 엔화값은 결국 1백90엔대까지 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같다.
지금 우리의 깊은 관심사는 세계주요통화들이 이처럼 천하대란기를 맞고 있는데 무역고가 연6백억 달러가 넘는 우리나라는 지금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아직 관계당국의 「책임있는 대응책」은 우리 귀에 들려오지 않고 있다.
외환문제는 워낙 국가간의 복잡 미묘한 문제여서 목소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라면 간만다행이겠지만, 「바다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라면 우리의 경제정책은 번번이 그랬듯이 또 한발 늦는 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달러화파동은 우리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대미무역은 흑자를 지속해 달러화폭락은 우리 쪽에선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러나 연30억달러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해온 일본의 엔화 등고는 그만큼 우리 쪽에 탄력을 준 셈이다.
우리는 가까이 일본과의 무역적자에서 그동안 수모적인 얘기를 거듭거듭 들어왔다. 무역균형을 요구하는 우리 주장에 대해서 일본은 적자요인이 일본 아닌 한국쪽에 있다고 강변해 왔다.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일본경제에 기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논리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가령 84년의 경우 일본으로부터의 기계류 수입이 40억달러인 것에 비해 우리의 대일무역적자는 30억달러였다는데 있다. 뿐더러 우리나라의 전체 기계류수입 가운데 70%이상이 일본에서 들어오고 있다. 우선 값이 싸고, 그에 따른 금융의 유리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썩 달라졌다. 우선 엔화값이 10%이상이나 올랐고, 앞으로도 고가세는 계속될 전망이며, 그런 추세는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종래의 산업정책을 여하히 바꾸어 엔화 고가시대에 적절히 대응하느냐에 따라 명암을 가름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장·단기전략을 면밀하게 세워 계획적으로 밀고가면 우리는 누년의 숙원인 대일무역적자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전기를 잡을 수도 있다.
첫째는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기계류를 하루빨리 국산으로 대체해야 한다. 여기엔 우수한 기계제작을 위한 최신 최고의 설비장치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바로 이 부문에서 일본이 그동안 기계수입자에게 주어오던 금융상의 유리한 여건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주는 정책을 서둘러 세워야한다. 여기엔 우선 금리인하의 혜택이 따라야하고, 장기상환의 조건도 만들어 주어야 하며, 기술도입과 개발도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단기·중기·장기전략으로 나누어 조직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그 효과가 50%만 나타나도 대일무역적자의 3분의 2(20억달러)는 줄일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기계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각종 중간재들도 쉬운 분야부터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실천하면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이다.
부품수입 또한 국산부품의 고급화 품질혁신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산업개편 노력은 지금과 같은 호기를 놓치고 말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지금의 엔화 고가시대를 연출한 G5국은 달러저가가 바로 개도국 성장을 위한 일이며, 그것은 또 세계경제성장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덕담이다. 이런 모처럼의 덕담을 우리는 귓등으로 듣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달러가치는 더 내릴 필요는 없는지, 자금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우리의 통상당국은 종합대응책을 세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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