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칼럼] 주택 장기대출의 虛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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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집값의 80%까지 30년간 꿔줘 서민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는 주택자금 장기대출 제도가 도입된다. 서민의 내집 마련이 손쉬워질 것이라 기대가 크다.

또한 은행이 장기대출한 저당권을 채권 형태로 유동화해 시중 여유자금을 주택시장으로 끌어들여 활용하는 이른바 모기지(mortgage)제를 도입하면 주택금융시장의 활성화와 선진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및 주택시장 여건을 생각하면 몇가지 걱정이 앞선다. 주택자금 장기대출 제도와 대출 저당권 유동화의 모국인 미국과 비교할 때 주택자금 대출제가 기대와는 달리 가계에 부담이 돼 부작용을 초래하고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가계 소득에 비해 집값이 싸다. 주택가격의 국제 비교에 사용되는 PIR(housing price to income ratio), 즉 가계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은 미국 도시의 경우 4 정도이나 우리는 6이 넘는다.

따라서 동일한 비율을 대출받아도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미국보다 우리가 50% 정도 버겁게 된다. 따라서 이 제도가 저소득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의 내집 마련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대출받는 가계의 신용불안과 가계 파산의 우려다. 고용시장도 불안하고 종신고용을 기대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30년 장기대출 상환의 안정성이 확보될지 우려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서민의 내집 마련이 쉬워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속단이다. 경제구조의 건실화를 바탕으로 고용시장의 불안정을 해소해 신용부족 및 개인 파산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주택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함께 추진해 가계의 대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윤혜정 평택대 도시계획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