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은밀한 유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16세기 회화에서 '음악의 여신'이 아름다운 여인의 몸으로 나타나 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류트와 음악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수단이었다.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카라바조(1571~1610)는 '류트 연주자'라는 제목의 유화를 두 점 그렸다. 하나는 그가 로마에서 모셨던 델몬테 추기경(1549~1626)에게 그려 준 것(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이고 다른 하나는 델몬테의 친구인 마르케세 빈센조 주스티아니에게 준 것(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이다. 델몬테는 미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후원자였다.

그림 속 주인공은 다소 음탕한 시선과 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류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머리를 묶은 리본이나 블라우스에 덧댄 넓은 천 때문에 모델이 여성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델몬테가 데리고 있었던 스페인 태생의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인 페드로 몬토아라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로마 음악계의 실력자로 활동했던 델몬테 추기경은 미소년을 농락했던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피아노처럼 반주 악기로 인기가 높았던 류트는 17세기 들어서 울림통의 모양 때문에 매춘 등 음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림 속의 악보는 베네치아에서 발행된 자크 아르카델트의'마드리갈 1집'에 나오는 사랑의 노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도 알게 되겠죠…" 외로움에 지친 듯한 모델의 표정이나 테이블 위에 섬세한 필치로 묘사된 바이올린.리코더는 마치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와서 함께 앙상블을 연주하자고 권유하는 듯하다.

메트로폴리탄의'류트 연주자'에는 에르미타주 소장품에 등장했던 과일이나 꽃 대신 스피네타(삼각형의 작은 건반악기)가 등장한다. 금방 시들고마는 꽃과 과일이나 덧없는 청춘에 비해 음악의 즐거움은 더 오래가는 것일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