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력증강 비밀까지 공개하는 군이 됐으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방위사업청에서 발생한 기밀유출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현역 대령인 총괄사업팀장이 정보화사업팀으로부터 홍보자료 요청을 받자 군사 기밀인 각 군의 전력 증강계획 자료를 건네줬다. 정보화사업팀은 이 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 설치업체에 넘겼고, 이 업체는 자료가 평문으로 돼 있자 그냥 게재했다는 것이다. 군기밀이 이렇게 허술히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의욕이 앞선 실무자의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렇게 안이한 차원에서 볼 일이 결코 아니다.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군에서 비밀문건의 유출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군 조직을 근저에서 무너뜨리는 해악이기 때문이다. 총괄사업팀장이라는 요직을 맡은 고급 영관급 장교의 보안의식이 이 정도다. 현역과 일반직 등 무려 2200명이 근무하는 이 부서에서 유출된 비밀이 4일 동안 홈페이지에 떠있어도 아무런 대응조치가 없었다. 연간 8조원을 쓰면서 무기 도입 등 방위산업을 총괄한다는 부서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지는지 납득이 안 간다. 방위사업청의 인선(人選)과 감시기능 등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라.

방위사업청은 출범하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방위사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과도한 비밀분류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민대표가 참가하는 '정보공개 심의위원회' 설치 등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의 보안의식도 형편없는 것이 드러난 마당에 외부 민간인들의 기밀접근이 용이해진다면 기밀 유출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첨단 잠수함 건조나 전투기 제조 등 핵심전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이 북한과 미연의 가상 적국들에 누설됐다. 전력 강화에 치명상을 입게 돼 안보에 적신호가 울린 것이다.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업무체계 미숙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