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합병으로 본 증권사 이름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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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미래에셋증권이 KDB대우증권을 인수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두 회사를 더하면 자기자본 규모가 7조8000억원대에 이른다. 압도적인 업계 1위 ‘공룡 증권사’의 명칭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현주(57)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이날 “대우증권은 한국 증권시장의 역사와 같기에 (합병 증권사의 이름은) ‘미래에셋대우증권’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합병하는 두 회사의 이름을 함께 쓰는 사례가 많다. JP모건 체이스 은행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이 새 은행 명을 ‘KEB하나은행’으로 정했다. 해외 네트워크가 강한 외환은행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다. 합병에 반대한 외환은행 노조를 달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다만 역대 증권사의 인수합병사(史)에선 인수되는 기업의 이름이 합병법인에서 그대로 유지된 사례는 드물었다. 지난해 6월 농협금융지주는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NH농협증권에 합병했다. 7개월 뒤인 올해 1월 통합 증권사의 이름을 ‘NH투자증권’으로 정했다. 우리투자증권을 매각한 우리금융지주가 ‘우리’라는 명칭의 사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1969년 한보증권으로 출발한 우리투자증권은 4번의 인수합병(M&A) 등을 거치며 총 6차례나 이름을 바꾸게 됐다. 지난해 10월엔 동양종금증권이 대만의 1위 증권사인 유안타금융그룹에 인수돼 ‘유안타증권’으로 새로 출발했다. 2007년 12월 서울증권은 지배주주가 유진그룹으로 변경됐다. 그러면서 1954년부터 사용해 온 ‘서울증권’ 간판을 내리고 ‘유진투자증권’으로 변신했다.

정반대 사례도 있다. 국내 3대 투자신탁 중 하나인 한국투자신탁을 모태로 한 한국투자증권은 인수 당하는 증권사였지만 이름을 지켰다. 2005년 3월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한 동원금융지주는 통합증권사의 이름을 ‘동원증권’이 아닌 ‘한국투자증권’으로 선택했다. 동원금융지주가 합병 증권사의 존속법인을 동원증권이 아닌 한국투자증권으로 정하는 ‘역합병’을 했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을 얻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투신사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2000년 대한투자신탁을 인수해 탄생한 하나대투증권은 이름에서 ‘대투’를 빼고 대신 하나금융투자로 변신했다.

‘증권’이란 이름을 떼기 시작한 건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이때부터 기존 브로커리지(매매중개) 업무 이외에 자산운용·선물·종금·신탁업 등을 ‘금융투자업'이란 이름으로 단일 회사가 모두 할 수 있게 됐다. 정부도 법 취지에 맞게 ‘××증권’이란 회사이름을 ‘××금융투자’로 바꿀 것을 증권사에 권장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2009년 9월 사명을 신한금융투자로 바꿨다. 다만 아직 ‘금융투자’로 이름을 바꾼 회사는 많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57개 국내외 증권사는 신한금융투자를 비롯해 세 곳이다. 2010년 5월 일본계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의 한국법인이 노무라금융투자로 이름을 바꿨고, 지난 9월엔 하나대투증권이 하나금융투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금융투자’란 단어에 익숙지 않아 증권사를 은행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를 우려한 증권사들이 정부 권고대로 이름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론 금융계의 업종 간 융합이 활발해질 것이므로 ‘금융투자’란 이름을 쓰는 회사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브랜드 전문가인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금융투자업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고객의 신뢰가 중요하며 이를 구축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합병회사의 이름을 정할 때도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브랜드 가치를 따져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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