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치는 제국주의 아니다” 첫날부터 쏟아진 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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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역사검증 본부장(간사장·왼쪽)이 22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 기구는 자민당 창당 60주년을 맞아 지난달 설치됐다. [TV아사히 캡처]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무엇이 바뀌었고, (미군) 점령 정책에서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를 확실히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

자민당 역사검증단 활동 시작
난징대학살·위안부 다룰 듯
수정주의 논란 재연 가능성
자민당 내에서도 우려 목소리

 일본 집권 자민당의 역사 검증 기구가 22일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 일본 근현대사를 검증키로 해 역사 수정주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본부(역사검증 본부)’는 이날 향후 논의 내용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이 기구는 창당 60주년을 맞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총리) 직속으로 지난달 설치됐다. 회의에는 본부장인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간사장과 이 기구 설치를 주도한 이나다 정조회장(본부장 대리) 등 자민당 의원 약 60명이 참석했다. 이나다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정치인이 어떤 역사관을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참석자 중에서는 일본의 대만과 한반도 통치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와는 다르다”“국민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상정하기 바란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니혼TV 계열 NNN은 전했다.

 이나다는 지난 7월 회견에서 일본의 전범을 심판하기 위해 1946~48년 열린 도쿄재판 검증을 강조한 만큼 역사 검증기구는 이를 핵심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 경위와 중국과 일본이 시각 차를 보이는 난징(南京)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검증기구의 결과물은 일본 정부 입장은 아니지만 집권당의 견해를 대표하는 만큼 역사 수정주의 논란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역사검증기구는 월 1~2회 회합을 가질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검증 방식과 관련, 주제별로 초청할 강사는 사상적 중립성을 중시해서 뽑을 방침임을 확인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TBS방송은 “총리와 그의 친구들이 추진하는 일로 외부에서는 볼텐데, 균형감각을 잡아야 한다. 전후 70년 담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왜 또다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몇몇 의원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이날 모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아베 총리가 지난 8월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를 언급하며 “국제사회가 (총리 담화를)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이 자국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후세의 국민과 국제사회 사람들에게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등 해외 언론사들이 이날 회의 취재를 희망했으나 자민당 측이 이를 불허했다.

 공교롭게도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은 지난 20일부터 ‘전후 70년-도쿄재판과 연합국군총사령부(GHQ)’라는 제목의 역사 검증 시리즈 연재를 시작했다. 22일자는 연합군의 일본 점령정책 결정을 주도한 더글러스 맥아더 총사령관을 ‘거짓과 허영투성이의 통치자’로 비판하는 내용을 실었고, 21일자는 A급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재조명하면서 ‘일본의 히틀러’라는 수식어는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도쿄재판은 맥아더가 스스로를 ‘극동의 통치자’로 연출하기 위한 정치쇼였다“고 비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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