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서명하라고 해서 했는데 … ” 주민소환 수임인 불법 등록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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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남FC 직원이 자신도 모르게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추진본부의 수임인으로 등록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 행위나 기타 사무를 위임받는 수임인으로 등록된 해당 직원 A씨는 “지난 9월께 상사가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는데 그게 수임인 등록 서류인지 몰랐다”며 “당시 등록 서류라는 것을 알았어도 신분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거부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지사 임명 경남FC 대표
간부 통해 직원 등록 요청 의혹
“강요나 서명 지시한 적 없다” 해명
지역 축구인들 사퇴 운동 예정

 15일 경남도선관위 등에 따르면 홍준표 경남지사가 임명한 경남FC 박치근 대표가 팀장 등 중간 간부를 통해 부하 직원에게 수임인 등록을 요청해 실제로 5~6명이 등록서에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이들 직원 중 일부는 자신이 수임인으로 등록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박 대표는 최근 자신을 박 교육감 주민소환 추진본부 수임인으로 등록하고 다른 직원을 수임인 등 서명 활동에 개입시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본지 12월 11일자 23면) 무상급식 중단 등으로 갈등을 빚은 홍 지사의 측근으로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K리그 정관에는 “(구단 등) 연맹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맹은 이를 근거로 박 대표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원 등 다른 사람의 서명을 받았는지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주민소환 운동에 대해 설명한 뒤 이에 찬성한 직원은 서명에 동참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며 “직원에게 강제로 수임인을 강요하거나 서명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주민소환법에는 공무원이나 통·반장 등은 수임인이 될 수 없다고 돼 있다. 또 기존 수임인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고 대리 수임인 등록을 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다만 이렇게 등록된 수임인을 이용해 대신 서명을 받으러 다니다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서명을 놓고 선관위의 정밀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경남도선관위 관계자는 “현재 박 교육감 주민소환 추진본부는 지난 9월 부터 내년 1월 까지 수임인 9648명이 서명운동을 받겠다며 선관위에 신고했다”며 “아직 선관위에 서명부가 넘어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대리 서명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형두 축구장학재단과 경남FC서포터스연합회 등 경남 축구인들은 조만간 박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전형두 축구장학재단의 옥명훈 사무국장은 “경남FC 전 대표 등이 횡령 등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팀도 2부 리그로 강등된 상황에서 대표가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처사”라고 지적했다. 홍 지사와 박 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뒤 이뤄질 전망이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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