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문재인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詩로 심경 표출?

중앙일보

입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6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故)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을 올렸다.

안철수 의원이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혁신 전당대회 제안’을 거부한 문 대표에게 재고를 요청하며 탈당까지 시사한 상황에서다. 이때문에 “문 대표가 자신의 현재 심경을 한 편의 시로 대신 표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당초 문 대표 주변에선 이날 중으로 문 대표가 입장을 낼 거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시간을 더 주셔야죠”, “오늘은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고 고정희 시인이 1983년 펴낸 네번째 시집 『이 시대의 아벨』에 수록돼 있다.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문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안 의원과 당내 비주류 의원이 ‘문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공격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다음은 시 전문.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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