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부 눈치 안 볼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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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계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상생협력기금’에 불만을 드러내는 건 사실상 ‘준조세’ 성격이 짙다는 판단에서다. 준조세는 세금 이외에 물리는 각종 법정부담금과 기부금·성금 등을 말한다.

목표 채우기 위해 할당 우려
이익 없는 기업까지 동참 땐
사실상 세금과 마찬가지
부처에 내는 부담금만 95개

 기업은 전기를 사용할 때 전기료 외에 추가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내야 한다. 아파트를 지을 때도 학교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부담금을 납부한다. 현재 각 부처가 운용하는 부담금만 95개에 이른다.

 경제계에선 ‘FTA 상생협력기금’도 이런 부담금처럼 기업에 의무적으로 운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강제 납부가 아닌 자율적 기부금”이라고 달래고 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정책결정권을 가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금 모집이 시작되면 ‘청년희망펀드’처럼 주요 대기업이 먼저 거액을 내고, 다른 기업이 이를 따르는 관행을 답습하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FTA로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는 기업들까지 기금에 동참시킬 경우 세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FTA로 어떤 기업이 얼마나 이익을 얻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낼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걷는 각종 부담금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재계도 ‘FTA 상생협력기금’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1년 14조8000억원이던 부담금은 지난해 17조2000억원으로 16% 급증했다. 수익을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쓰고 신(新)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재계는 특히 정부가 1조원이라는 목표를 세워놓은 걸 주목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해마다 1000억원을 거두겠다고 공언한 만큼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사실상 기업에 기금을 할당할 가능성이 크고 ‘준조세’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경제단체·연구기관 등의 모임인 ‘FTA 민간대책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여·야·정 협의체의 기금 조성 의견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대목도 실제론 기금에 대한 반발을 담고 있다. 민대위 관계자는 “문구에 ‘환영한다’는 표현 대신 ‘긍정적 평가’라는 단어를 쓴 것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찬성하진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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