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이 배우·스태프 … 뮤지컬로 배려 배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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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한민국 인성교육대상을 받는 현일고(경북 구미) 학생들이 지난달 25일 학교 강당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창작뮤지컬 ‘짓밟힌 꿈’을 공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구미=프리랜서 공정식]

“뮤직 레디, 위안부 할머니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액션!”

구미 현일고 4년째 뮤지컬 축제
학생들 "학교서 웃는 일 많아져"
한동대는 ‘무감독 시험’신뢰 쌓기
전교생 절반 봉사 프로그램 참여

 지난달 25일 오후 경북 구미 현일고 대강당. 1학년 8반 여학생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짓밟힌 꿈’이란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다룬 이야기인데 올가을 교내 뮤지컬 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감독인 미성(16)이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주인공 유현(16)이가 무대 한가운데서 독백을 시작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지만 내 상처는 아물지 않는구나.”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무대가 어두워졌다.

 다시 미성이가 신호를 보내자 음악 담당 희수(16)가 수십 페이지의 대본과 노트북을 번갈아 보며 무대 분위기에 맞게 배경음악을 틀었다. 채린(16)이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무대 배경을 실감나게 세팅했다. 학생들은 20분의 짧은 공연시간 동안 관객과 함께 울고 웃었다. 공연을 관람한 3학년 황경욱(18)군은 “잊고 지나쳤던 위안부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일 현일고는 뮤지컬을 활용해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공적을 인정받아 2015 대한민국 인성교육대상을 받는다. 인성교육대상은 교육부·여성가족부·중앙일보가 주최하는 교육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다. 현일고는 2012년 모든 1학년생이 참여하는 뮤지컬 축제를 시작했다. 10개 학급에서 총 20개 팀이 1년 동안 작품을 준비해 무대에 올린다. 대본부터 무대 세팅까지 모두 학생 스스로 결정한다. 진혜숙 예체능부장 교사는 “요즘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협업이다. 뮤지컬은 협동과 조화, 배려의 마음씨를 길러주고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까지 느끼게 하는 최고의 인성교육”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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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뮤지컬을 준비했던 학생들에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울에서 국제중을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구미로 온 유현이는 학년 초만 해도 ‘까칠이’로 불렸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했죠. 친구들에겐 조용하라는 말 외에는 거의 대화도 안 했어요.” 그러나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성격이 원만해졌다.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유현이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웃는 일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학교 생활이 즐거워요”라고 말했다.

 희수는 처음엔 친구들과 갈등이 많았다. 주인공을 하고 싶었지만 스태프를 맡게 돼서다. “누구나 돋보이고 싶죠. 하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양보하는 일이 기쁘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어요.” 반장인 유정(16)이는 모두가 꺼리는 일본 순사 역을 자임했다. “우리 팀을 위해 누군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다만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자꾸 눈물이 나서 NG도 수십 번 낸걸요.”

 뮤지컬 준비 전후로 1학년생들의 대인관계 능력을 조사했더니 소통과 이해 등 7개 전 영역에서 점수가 올랐다. 특히 소통 능력이 55점(만점 100점)에서 63점으로, 이해성은 64점에서 68점으로 높아졌다. 인성교육이 잘 이뤄지자 덩달아 학업 성적도 올랐다. 이 학교 장창용 교장은 “소위 SKY(서울·고려·연세)대 합격자가 뮤지컬 전후로 4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학생들이 협업과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배우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결과”라고 말했다.

 현일고와 함께 인성교육대상을 받는 한동대는 1995년 개교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감독 시험을 치렀다. 학교가 주도하는 100여 개의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전교생의 절반가량(2014년 45.5%)이 나눔을 실천한다. 또 다른 수상 기관인 한국청소년연맹은 81년부터 아람단·누리단 등 학교급별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의 바른 인성 함양에 힘써왔다.

구미=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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