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리 “칼 건넨 적 없다” 공소사실 부인 … 더 엉킨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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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 사건’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여 가고 있다. 검찰이 주범으로 새로 기소한 아서 존 패터슨(36)의 첫 재판이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열렸으나 18년 전과 똑같이 “내가 목격자, 네가 살인자”라는 구도가 재현됐다. 특히 증인으로 출석한 에드워드 리(36)가 기본적인 검찰 공소사실마저 부인하면서다.

‘이태원 살인’ 재판서 커진 의문점
패터슨·리, 당시 상황 엇갈린 진술
피해자 쓰러진 방향도 새로운 증언
“왼쪽으로 돌아” 18년 전엔 “오른쪽”

 의문점은 두 가지다. 검찰 공소사실의 요지는 97년 4월 3일 오후 9시50분쯤 이태원의 버거킹 화장실 앞에서 리가 패터슨에게 칼을 건네며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를 찔러보라”고 부추겨 패터슨이 조씨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4일 재판에서 리에게 화장실로 가기 전 패터슨에게 칼을 건넸는지부터 물었다. 패터슨이 ‘살인 피고인’으로, 리는 ‘목격자’로 신분이 바뀌어 범행 전 상황만 진술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리는 “칼을 건넨 적도, 조씨를 찔러보라고 말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햄버거를 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뒤따라온 패터슨이 갑자기 조씨를 칼로 찔렀다”고 주장했다. 리는 화장실 가기 전 상황에 대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는 18년 전 검찰 수사, 재판 등에선 “패터슨이 접힌 칼을 펴면서 뭔가 보여줄 테니 가자고 해 함께 갔다”고 진술했었다. 패터슨의 조씨 살해 동기와 관련해서도 “조씨가 지나가며 패터슨을 쳐다봤고 불쾌해진 패터슨이 범행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에 패터슨은 “ 조씨가 날 쳐다보고 간 것과 범행 장면 등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리가 공소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검찰이 패터슨의 살인 혐의를 더 추궁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숨진 조씨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한 진술은 통째로 바뀌었다. 리와 패터슨은 이날 법정에서 범행 장면을 재연하면서 “오른쪽 목을 칼에 찔린 조씨가 왼쪽으로(시계 반대방향) 돌아섰다”고 했다. 조씨가 돌아선 방향이 어느 쪽인가는 그가 흘린 혈흔, 리와 패터슨 옷에 묻은 핏자국의 패턴 검증 때 결정적 요소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가 먼저 오른쪽 목 부위를 1차 가격당한 후 오른쪽 방향(시계방향)으로 몸을 180도 돌려 가격한 사람과 마주보게 됐다’는 98년 대법원 판결문 및 수사기록 내용과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은 이를 전제로 “리가 세면대 앞에 서 있었다면 그의 상의에 스프레이로 뿌린 듯 묻은 핏자국이 생길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오른쪽으로 돌았다는 대법원 판결 내용은 통역상의 문제로 잘못 기재됐을 수 있다”며 “이후 혈흔 분석기법을 사용해 실제 분석해 보니 조씨가 왼쪽으로 돌아선 게 맞고 그때 생긴 혈흔이 벽에 묻은 핏자국 패턴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술이 달라지면서 18년 전 그날의 진실을 밝힐 키(key)는 사건 당일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진술과 혈흔 분석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함께 있던 미국인 친구들의 소재가 파악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백민정·이유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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