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벤처 “실리콘밸리, 거기 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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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럽의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과거 유럽 벤처기업들은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면 대기업에 팔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구글’이나 ‘제2의 페이스북’을 꿈꾸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영국 벤처기업 블리파다. 이 기업은 휴대전화에 깔린 애플리케이션으로 상품을 찍으면 어디서 가장 싼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블리파는 지난해 미국 기업으로부터 15억 달러(약 1조8000억원)에 사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부했다. 블리파의 최고경영자(CEO) 엠바리시 미트라는 “우리는 가장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 3월 미국 칩 제조업체 퀄컴의 자회사 퀄컴벤처스로부터 4500만 달러(약 530억원)를 투자 받았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스웨덴의 스포티파이는 매년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지난달 5억2600만 달러(620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2006년 설립된 이 기업이 투자 받은 돈은 11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의 CEO 대니얼 에크는 “유럽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를 만든다면 얼마나 멋지겠느냐”고 말했다. 인기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핀란드 벤처기업 수퍼셀도 지금까지 16억 달러(1조9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유럽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2010년 40억 달러(4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77억5000만 달러(9조1000억원)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유럽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비해 그만큼 저평가됐기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2일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현재 가치보다 훨씬 더 큰 가격이나 과도한 투자금을 요구하는 ‘뻔뻔한 자신감’으로 악명이 높다고 FT는 전했다.

 유럽 벤처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투자 받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급선무는 산업 곳곳에 퍼진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원활한 투자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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