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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정국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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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올해 정치권에서 자주 듣게 될 말은 개헌과 정계재편이다. 개헌론은 크게 두 갈래다. 권력 분산을 내세운 내각제 내지 이원집정부제가 한 축이며, 5년 단임제의 문제점 극복을 명분으로 한 4년 중임 대통령제 내지 정.부통령제가 다른 축이다. 각각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정작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 거론되는 대선주자들의 이해가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력히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 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고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개헌 논의가 제기되는 이유는 뭘까. 개헌 논의를 지렛대로 이합집산 또는 합종연횡을 할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다.

정계재편의 동력은 넘쳐난다. 그동안 명분이 없고 분출구가 마땅치 않았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조짐은 2월 전당대회에서 나타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당으로 복귀해 전면에 나서고 의욕적인 40대 재선그룹이 당 지도부 경선에 도전하면서 노 대통령과 거리 두기는 조심스럽게 퍼져나갈 것이다. '비판적 지지'로 포장하고서. 20% 안팎의 지지도를 가진 현 정권을 업고 갈 '바보'는 별로 없다. 본격화 시기는 5월 31일 지방선거 직후일 가능성이 높다.

여당의 분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다.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면서 친위세력과 비판세력이 결별하거나, 호남권 의원들이 이탈해 민주당과 결합할 수 있다. 또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김.정 장관 지지세력과 제3의 후보를 모색하는 그룹의 이탈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실용파와 좌파의 결별 시나리오도 나온다. 굳이 분석하자니 복잡하지 현실에서는 이런 시나리오의 몇 가지가 뒤엉켜 나타날 것이다.

한나라당도 결코 여당의 분화에 기뻐할 이유가 없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여당 내에서 갈라설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지금 구도로 가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흩어져 대선을 향해 각개약진하다가 다시 뭉치는 이른바 '헤쳐모여'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생각이다. 여권은 이에 대한 노하우도,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할 기술자도 보유하고 있다. 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의 경험도 갖고 있다.

사학법 강행처리와 12월 30일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여당이 민주당.민노당.국민중심당(가칭)과 손잡은 것은 시사점이 있다.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는 꼴은 못 보겠다는 세력들이다. 그러기에 여당 분화의 최종 지향점은 반(反)한나라당.반 보수 전선 구축, 반영남 호남-충청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여권발 지각변동은 작게는 한나라당의 젊은 비주류를, 크게는 한나라당의 핵심세력을 뒤흔들 수도 있다. 박근혜 대표-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 등의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느끼는 쪽이 분화한 여권의 특정세력과 손잡는 상황도 충분히 상정해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해 1월 1일자 본란에 '차라리 갈라서라'는 글을 실은 바 있다. 정치의 길이 달라 같은 당에 몸담기 어렵다면 나눠 서는 게 낫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 갈라서는 것조차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의 엄정한 비판에서 비켜나지 못할 것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