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흑연감속로 다시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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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이 금융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는 가운데 북한이 20일 그동안 중단 상태였던 흑연 감속로의 건설 재개를 언급하고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2월 19일자 상보(詳報)에서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 제공을 집어치운 조건에서 우리는 5만㎾, 20만㎾ 흑연감속로와 그 연관시설에 기초한 자립적 핵동력 공업을 적극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 종료에 대응한 입장 발표지만, 내용은 금융제재를 강력 비판하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등 북한식 '대미 압박술'을 펴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상보를 통해 언급한 흑연 감속로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건설이 중단됐던 영변과 태천의 각각 50㎿(5만㎾), 200㎿(20만㎾) 원자로다. 흑연 감속로는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핵무기 원료인 고품질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서 흑연 감속로 공사를 중단하는 대신 핵물질 전용이 어려운 경수로 건설을 약속했다. 따라서 북한의 주장은 2003년 2월 영변 5㎿ 원자로의 재가동과 플루토늄 추출 등에 이어 미국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흑연 감속로 공사 재개를 언급함으로써 핵 위기 수위를 한 단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상보는 또 ▶경수로 중단에 따른 수백억 달러의 물질적 손실 보상과 ▶금융제재 철회 ▶정당방위를 위한 핵무기 보유와 강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상보를 통해 미국에 금융제재와 관련한 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과 금융제재는 관계없다는 입장이 분명해 북한의 압박술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 흑연감속로란=핵분열 시 생성되는 고속의 중성자를 느리게 만드는 감속재로 흑연을 쓰는 원자로다. 경수로는 증류수(경수)를 사용한다. 경수로에 비해 설계.제작이 쉽지만 열효율은 떨어진다. 대신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해 강대국들은 초창기에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했다. 북한의 원자로는 모두 흑연 감속로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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