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제비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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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치안본부장의 「제비족」에 대한 정의가 재미있다.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 주변에서 부녀자를 유혹, 농락한 후 그 약점을 이용, 금품을 갈취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남자』다.
그 정의는 흠잡을데 없지만, 다른「제비족」설도 있다.
『제비처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여자를 꾀는 남자』, 혹은 『제비처럼 날렵하게 접근했다가 여자에게서 정조와 돈을 뺏고 날쌔게 달아나는 남자』는 어떨지….
아닌게 아니라 『제비가 사람을 어르면 비가 온다』는 속담이 있고,「물찬 제비」란 말도 있으니 어지간히 약삭빠르고 날랜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제비의 날렵한 모습은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고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제비족은 제비를 외면상 또는 형태상 닮았을진 몰라도 하는 것은 아주 고약한 걸로 정평이 나있다.
부녀자의 약점을 이용한 금품 갈취배, 유흥가 주변의 폭력 공갈배도 있다. 그중 가장 악질은 해외취업근로자 부녀에 대한 금품 갈취배다.
남의 아내를 탐해 농락한 것부터가 고약한건 더 말할게 없다. 더 나쁜건 남이 해외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빼내 유락에 탕진한다는 점이다.
요즘 한몫을 잡으려고 노리는 제비족이 우글댄다고 한다. 어떤 업소에선 부녀자 유인을 위해 제비족을 고용한다고도 한다.
엊그제는 귀국 후 돈이 한푼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고 자살한 해외 근로자의 얘기가 보도됐다.
돈이 아까울건 더 말할게 없다. 더 심각한건 허망한 보상일 것이다. 성실하게 살려고 애써도 아무보람이 없다면 세상은 「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믿었던 아내의 배신은 더 치명적이다. 제비족은 비겁한 남자의 대명사지만, 그 제비족과 놀아나는 부녀자들은 더 한심하다.
가정이 있고, 생활도 어렵지 않고, 거기다 남편까지 있는 부녀자들이 춤바람에 가정을 등지는 일이 결코 적지 않다고 한다.
남편이 멀리 뗘나 있어서 외로운 부녀자는 오히려 나은 편이다.
여성의 정절관 변화는 제비족 발호의 온상인 것 같다.
『조선명륜록』엔 조선시대 열녀들이 소개돼 있다. 남편이 죽고 엿새만에, 곡기를 끊은지 이레만에 얼어죽은 사천의 열녀 전주이씨의 이야기도 있다. 20세에 그는 정조를 지켜 순사 했다.
그런 풍습은 다분히 그 시대사회의 압력이었다. 수절을 중시한 주자학적 명분의리논의 시대산물이다.
지금은 물론 남편이 죽었다고 개가를 막는 일은 없다. 그건 부자연스런 일이 분명하다. 이혼도 자유로운 시대다.
그러나 그 시대의 의리와 수절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는 남편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제비족 소탕령이 실효를 거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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