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100번째 영화' 흔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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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화감독 임권택-제작자 이태원(태흥영화사 사장). 2002년 '취화선'으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 칸영화제 수상(감독상)의 영광을 함께 한 단짝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1983년 불교계의 반발 등으로 중단된 '비구니'를 비롯, 몇 차례 불발탄이 거듭됐다. 둘의 만남은 '아제아제 바라아제'(89년)에서야 제 궤도에 올랐다. 이후 함께 만든 11편의 영화 가운데 '장군의 아들'시리즈와 '서편제'는 대대적인 흥행성공을 거뒀다. 둘의 인연은 칸영화제에 '춘향뎐'에 이어 두번째 도전한 '취화선'으로 마침내 상을 받으면서 정점에 올랐다.

'비구니'의 제작중단 당시 이미 3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던 이 사장은 임 감독에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임 감독은 그런 이 사장을 "배포가 센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제 그런 배포로 감당하기에는 한국영화계가 달라진 것일까. 20년 가까이 충무로의 대표적인 '감독-제작자'커플로 꼽혀온 이 사장이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천년학'에서 손을 떼겠다고 최근 밝혔다.

스타 캐스팅이 되지 않아 투자자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 배경이다. 당초 메인투자를 맡기로 했던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캐스팅 등을 이유로 부분투자로 입장을 바꿨다. 이후 새 메인투자를 물색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촬영을 시작하려던 '천년학'은 현재 제작 일정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이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부끄럽게 됐다"면서 "내가 힘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야 다른 제작자가 나서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영화라는 건 물론 돈이 없으면 안 움직이는 것이지만 해외에서 인정받는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이 나와야 전체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게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천년학'은 준비된 배우들과 좋은 시나리오가 갖춰진 만큼 영화가 잘 나올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임 감독은 담담한 어조로 "일이 그렇게 됐다"면서 "몇 군데 관심을 보이는 곳도 있으니 내년 봄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투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름난 연기자가 아니라서 흥행을 불안하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장군의 아들'의 박상민, '서편제'의 오정해,'춘향뎐'의 조승우 등 흥행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과감히 주연으로 발탁해왔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담당 허문영 프로그래머는 "제작비 때문에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한국영화가 아무리 산업화됐다고 해도 참담한 일"이라면서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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