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권고」안은 위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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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일 국회운영위에서는 지난 3년간 여야가 쌓아온 새 국회의 축적 중 하나를 근본부터 의심나게 하는 논쟁이 벌어졌다.
민한당이 작년 정기 국회 폐회직전 농정실패의 책임을 물어 제출한 박종문 농수산장관 해임권고 결의안의 의안 성립여부가 새삼 논쟁거리가 됐다.
민정당은 국회법 제74조에 의거, 의원20인 이상의 발의로(일반안건)제출한 이 안건이 국무위원의 해임결의는 재적3분의1이상의 발의로 제출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99조2항에 위배되므로 안건성립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한당은 유창순 국무총리(82·6·1), 노태우 내무·이규호 문교장관(83·4·29) 해임권고결의안이 의제로 채택되어 부결 처리된 선례를 들어 3년간 합법으로 인정되어온 안건을 뒤늦게 위헌이라니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섰다.
민정당은 그런 선례가 바로 정치적 타협에 의한 변칙이자 위헌이었음을 자인, 뒤늦게나마 새 선례를 만들어 정치행위를 헌법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양측의 주장을 듣고 보면 언뜻「닭과 달걀」의 논쟁과 같은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헌법에 재적3분의1 이상으로 발의요건이 명기된 국무위원의 해임조항이 의원 20명 찬성이면 언제라도 들고나올 수 있는 일반안건으로 남용되어서야 되겠느냐는 여당의 주장이나, 국회법에 따라 소수당이 구속력은 없지만 국무위원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어찌 위헌이냐는 야당의 논리가 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위헌성을 알면서도 국회의 파행 운영을 막기 위해 이미 세 번이나 타협했던 민정당이 이번에는 굳이 선례를 고치겠다고 나왔다가 다시 주저앉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또 민한당이 기세가 꺾여 이미 내놓은 해임권고결의안을 슬그머니 내버려둔 채 부랴부랴 국민당과 의동의 협조를 얻어 헌법 제99조에 맞는 박 장관의 해임안을 16일 새로 제출하는 속셈은 무엇일까.
민정당은 걸핏하면 장관의 해임문제를 들고 나오는 야당의 풍토와 관행을 고쳐야 겠다고 벼르다가 이번을 적기로 잡은 것 같다. 작년 추곡 가 책정문제로 이제야 농수산장관을 해임시키라는 야당의 주장이 우선 국민에게 잘 먹힐 것 같지 않고 또 이번 임시국회처럼 정부·여당이 약점이 적을 때 밀어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한당이 권고 결의안을 운영위에 계류시킨 것은 위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려(숫 적으로 반드시 질 테니까) 차후 유사한 안건 제출의 길을 원천봉쇄 당하는 것 보다는 계속 논쟁의 소지를 남겨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민정당은 국회운영의 파행을 두려워한 나머지 감수했던「위헌」을 다시 한번 방치, 집권당으로서의 호헌 의지를 의심스럽게 해버린 꼴이다.
또 민한당은 관철의지 없이 의원총회의 군중심리에 따라 무절제하게 권한을 행사했다가 스스로 문책방법의 존립근거마저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느냐는 느낌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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