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자 북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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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측은 59년 정초부터 북송문제에 관해 불길한 조짐을 보이는 조처와 시사를 했다.
밀입국혐의로 오오무라수용소에 억류됐던 42명의 한국인을 비밀리에 북한에 송환시킨 일본의 조처가 정초에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또 「후지야마」외상은 1월12일 오오사까(대판)에서 회견을 갖고 일본정부는 인도적차원에서 재일교포의 북한집단송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것으로 보도됐다.
최규하참사관은 본부의 훈령에 따라 13일하오「이따가끼」외무성 아주국장을방문, 강력한 항의를 제기했다. 최참사관은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는 좌시할수 없으며 북송음모는 한일현안의 타결을 원하지 않는 북괴와 그 하수인 조총련이 획책하는 가장 사악한 정치선동극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이따가끼」국장은 「후지야마」외상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그가 아직 동경에 오지않아 알수 없다고 말하고 여러 신문의 보도가 틀린 점을 보면 외상이 꼭 그런 말을 했을지 의심스럽다고 넘겨버렸다. 「이따가끼」 국장은 『나는 아직 대신으로부터 그와 같은 어떠한 계획을 연구해보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일본정부가 재일교포의 북송을 걸정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따가끼」 국장은 또 밀입국자 42명의 북송과 관련해 자신은 그 문제는 잘 모르기때문에 법무성출입국관리국에 진상을 알아봐야겠다면서 모든 책임을 법무성에 미루었다.
나중에 일이 터진 연후에 생각한것이긴해도 이날의 최-「이따가끼」요담에 우리가 좀 더 주목했더라면 북송추진에 관한 일본측의 정책방향을 알았을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유태하공사는 정초부터「야마다」차관, 「사와다」 수석대표를 만나 1월26일 재개될 회담이 실질적 성과를 낳도록 사전협의를 부지런히 했지만 북송문제는 흘려버렸다. 본부도 일본측의 시사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야마다」차관은 유공사에게 「기시」수상이 재선되지 않을경우 들어설 차기정권은 그나마의 일본측 성의도 없을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제 한국측이 뭔가 보여야할 때라고 본다』 고 말했다.
「사와다」수석대표는 문화재반환및 규제수역실정에 관한 일본측 입장을 설명하고 『이같은 협의내용을 귀국정부에 전문으로 보고해서는 안될것』이라고 충언했다.
그는 『 「기시」수상과 본인은 진심으로 한일현안을 타결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수 없다』고 전제, 『협의내용을 무선보고가 아닌 다른방법으로 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유공사는 『일본정부가 주일대표부의 무선통신을 도청하느냐』고 묻자 「사와다」대표는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나의 오랜 공직경험으로 미루어보면 한국측이 무선전신의 어떤 주파수를 사용하든 그것을 도청하는 방법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사와다」대표는 『우리의 협의사항이 알려질 경우 본인이 협상에 임하는 자세에 상당한 제약이 뒤따를것을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로 미루어보면 일본정부는 주일대표부와 본국정부와의 무선통신을 도청하는 것이 명백해져 우리는 중요한 보고와 훈령은 외교행낭, 또는 인편을 이용키로 했다.
유공사는 19일 귀국해 26일 재개될 회담대책을 협의했다. 조장관·임병직수석대표·유공사·장경근대표와 나는 연일 연석회의를 갖고 우리측이 앞으로 제시할 전략을 숙의했던 것이다.
그 결과 청구권문제에 관한 일본의 성의표시를 본후에 평화선문제를 해결한다는 다소 유연한 방침이 결정됐는데 어업문제에도 종래의 강경태도 보다는 다소 융통성 있는 협상대응전략을 수립했다.
사무적협의와 정치적 절충을 병행하되 우선은 정치절충에 주력키로하고 26일의 회담재개는 당분간 연기키로해 일본측에 통고했다.
이과정에서 임수석이 수석대표를 사임하고 유엔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강력히 희망했으나 이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우리측이 이같이 한일회담전략수립에 여념이 없을때 「후지야마」외상은 돌연 폭탄선언을하고 나온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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