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강연은 그가 지난해 5월 총리에서 물러난 뒤 이뤄진 첫 공식 행사다. 그동안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일체의 공식 활동을 자제해 왔다.
고 전 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사이에는 메우기 어려운 불신과 증오의 골이 자라고 있다. 역사 사실에 대한 해석이 극단으로 갈리고 국가 정체성까지도 논란거리가 됐다"고 현 정치 상황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념에 사로잡힌 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처한 다중적 위험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다시 권위주의 시대의 흑백논리로 돌아가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안으로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 정치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이념의 미혹에서 벗어나 실사구시를 따르는 길밖에 없다"면서 "이념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에 불과할 뿐인 만큼 안경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적 실용주의란 용어에 대해선 "이념보다 현실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실용주의지만 현실 안주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실용주의라는 의미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라고 설명했다.
고 전 총리의 강연에 정치권에선 "본격 정치 행보에 나서기 위한 신호탄 아니냐"고 본다. 여야의 이념 논쟁을 향해 쓴소리를 던짐으로써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고 전 총리는 질의응답에서 "현재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런 리더십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바람을 얘기한 것일 뿐"이라며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를 하고 있지도 않다"고 부인했다.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