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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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상협 국무총리는 13일 국회에서의 국정 보고를 통해 이른바 「정치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김총리는 특히 김영삼씨의 단식문제에 대해 정부책임자로서 처음 언급, 김씨의 주장은 제5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다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 법」에 저촉된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이 같은 행위가 계속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가 「정치국회」가 될 것이란 일반적인 기대에 비추어 보면 김총리의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은 솔직히 말해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사태는 미묘한 면이 없지 않다. 지금은 법적 규제를 앞세우기보다는 정치적 역성을 발휘해야할 때라는 뜻이다.
김총리는 앞으로의 법적 조치에 대해『사회적 안정을 깨뜨릴 우려가 있는 경우』라고 밝혀 상당한 유연성을 보였다. 이 말은 정치적인 문제를 법률적 차원에서 해결하려할 때에 생길 수 있는 정국의 경색이나 불협화음을 예방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다져온 안정을 깨뜨릴 가능성이 있을 때는 현행법에 따라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뜻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김총리가 지적한대로 정치적·사회적 안정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안정과 화합이 경제발전과 선진화의 전제가 된다는 점 또한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우리의 지난 헌정사를 돌이켜 볼 때 안정처럼 회자된 말도 드물다. 선거 때마다 정부· 여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하려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안정은 위협을 받는 양 여겨져 왔다.
역승을 겨냥해서 정부·여당이 독주를 하고 무리를 하는데서 흑백논리가 싹 텄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조그마한 양보를 하면 정권유지에 무슨 어려움이라도 생기는 양 생각해온 것이 지난날 정치인들의 의식구조였다고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궁지에 몰린 소수파는 원내에서의 극한투쟁을 불사하게 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급기야 원외로까지 정치투쟁을 확산시킨 일이 비일비재했다.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국정의 첫째목표로 설정한 제5공화국에서 이 같은 정치 형태가 재연되지 말아야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지만 민주정치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각계층간의 이해관계를 여과해서 국정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일사불난이나 규격화할 수 없도록 정치의 속성인 것이다.
정치의 장으로서 국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겠다고 그 동안 여야정치인들은 입을 모았다. 대화를 통해 소수파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직권당은 다짐해왔다.
그러나 이런 다짐들이 충실하고 만족할만하게 이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장외」로 번진 정치문제를「장내」로 주워담는 일이 이번 임시국회에 맡겨진 가장 큰 과제라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국회가 정치의 장으로서의 구실을 재대로 못한다면 정치인들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다.
현싯점에서 절실한 것은 정치적 역량이다. 사태를 침소봉대 해서도 안되겠지만, 안이하게 받아들여서는 더욱 곤란하다.
정치권에서 소외된 계층이 있는 한 참다운 정치적 안정은 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할 줄 믿는다.
김총리의 국정 연설은 장외의 문체를 국회 안에 수렴해보겠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을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총리의 정치현안에 대한 언급은 물론 총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온 정부의 입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신축성을 보인 대목 역시 없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조그마한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정치라고 부를 수 없다.
정국안정을 유지하려면 문제를 누적시키지 말고 그때그때 국회를 열어 문제를 노출시키고 해결책을 갖는 게 정치의 정도다.
그런 뜻에서 정부·여당이 「장외의 문제」를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임시국회를 연 것은 잘한 일이다.
앞으로 있을 국회의 토론과정에서 이른바 「현안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쟁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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