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9월] 이달의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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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두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시도 마찬가지지만 시조 역시 관념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작품을 읽고 나서 무슨 얘기인지 모르거나, 누구나 아는 빤한 이야기는 금물이다. 둘 다 관념이 지나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읽고 나서 "그렇지!" 라고 느끼게 하거나 "그거 기발한데"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관념과 싸우다 보면 그런 좋은 표현을 얻게 된다. 응모작품 중에는 '억겁의 세월''소중한 환란''구태의연한 비유들''무심히 흘러간 연화(年華)''생존의 약육강식''피맺힌 절규'등 관념과 상투어들이 아직도 많다.

하나는 다른 측면이지만 단시조 창작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시조가 세계에 하나뿐인 유일한 장르이고, 이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길은 단시조다. 일본의 하이쿠가 세계적인 장르가 된 것을 눈여겨보자. 시조는 하이쿠에 비해 융숭한 맛과 깊이를 창조할 수 있는 폭넓은 그릇을 가졌다. 단시조 창작이 자유자재로 된다면, 응당 그 이후에 연시조와 사설시조로 폭을 넓혀도 좋으리라.

장원으로 선정한 '밑줄 긋기'는 묘사에 이은 시적 진술이 뛰어난 작품이다. '밑줄로 묶인 것들은 모두가 그리움이다'라는 해석적 진술은 낯익으면서도 새롭다. 각 수의 종장 처리도 유연하다. 차상의 '그믐달'은 겨울나무 가지 끝에 걸린 그믐달을 마치 집을 떠나보내고 자식을 애절하게 기다리는 어머니로 환치시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수인데도 배경이나 행간에 많은 의미를 함축해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단풍나무'는 둘째 수 종장이 여운을 잘 살려내고 있지만 각 장의 연결이 똑똑 끊어지고 있는 점, 4행과 5행의 육화되지 못한 거친 표현들이 눈에 거슬렸다. 분발을 바란다.

<심사위원:김영재.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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