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운영 형을 기리며

그토록 꼿꼿하고 당당했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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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 형, 운영 형!

안개이듯 바람이듯 어찌 이리 흔적도 자취도 없이 떠나고 맙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의 느닷없는 비보는 허망하고 또 허망하여 그저 기막힐 따름입니다.

차 한잔을 나누며 "우리 팔십까지는 삽시다" 한 것이 누군데 이렇게 홀연히 떠나고 맙니까. 그 말은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아니고 이 세상을 향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남자 평균수명이 75세가 된 세상에서 예순한 살도 나이라고 이렇게 황급히 떠납니까.

어느 날인가는, 우리가 마지막 가는 날 우리의 관을 들어줄 친구를 사귀어 두었는지 모르겠다며 서로를 보고 허허롭게 웃은 일이 있습니다. 정 형, 꽃은 피는 순서대로 집니다. 어제 핀 꽃은 오늘 지고, 오늘 핀 꽃은 내일 지는 게 온당한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은 그 순리를 역행합니까. 정 형이 내 관을 들어야 옳지 어찌 나에게 정 형의 관을 들게 합니까.

정 형, 운영 형!

고작 이 세월을 살려고 그 많은 공부를 한 것입니까. 태산이 무색할 독서, 그 해박한 지식이 아깝고 아깝습니다. 진정 팔십까지 살아야 될 이유가 그것이었는데, 당신을 데려간 하늘의 무정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자칫 딱딱하거나 건조해지기 쉬운 논설이나 평문을 문학적 미감으로 빛나게 했던 그 특유의 글솜씨가 아깝고 또 아깝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묵직하게 울림 좋던 청아한 음성으로 순발력 좋고 균형있게 방송 토론을 진행했던 그 탁월한 능력이 아깝고도 아깝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경제평론가' '당대의 대표적 재사'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 '진보'라는 짐이 당신의 평생을 고달프게 했습니다. 두 번이나 신문사와 대학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입니다. '진보'라는 게 뭐 별것입니까.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진실의 편에 서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정치가 왜곡되고 있는 분단된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곧 죄악시되고 범죄시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외롭고 힘겨운 그 길을 평생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당신은 한국이라는 땅에서 쉽게 출세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의 사람다운 세상을 사람답게 살려고 한번 택한 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당신이 남긴 재산은 전세 아파트가 전부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눈을 부릅뜨는 당신의 서늘한 눈길을 느낍니다. 압니다. 당신의 그 증류수 같은 결벽증을. 사람들은 당신을 깐깐하다 못해 까탈스럽다고 합니다. 그건 흉이 아니라 칭찬입니다. 그만큼 당신은 이 세상을 꼿꼿하고 꿋꿋하고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마지막까지, 몇 번씩 입원 퇴원을 거듭하면서도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떠나갔습니다. 어찌 그리 단호할 수 있습니까.

정 형, 운영 형!

거친 세월의 바다를 노저어 가며 정 형과 길벗이 되었음은 크나큰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당신의 관을 들어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계십니까. 당신을 흠모하는 저 많은 사람의 슬픈 전송을 들으며 먼 길 편히 가십시오.

정 형! 운영 형!

엎드려 통곡합니다.

조정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