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체면주의 버리자'는 건 무슨 의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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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6일 발표된 남북 장관급회담 합의문 1항에는 "남과 북은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맞게 남북관계에서 일체 체면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적 입장에서…"라는 문구가 있다. 남북한의 국어사전에도 없는 '체면주의'란 용어가 들어간 것이다. '체면주의'는 북측이, '실용주의'는 남측이 주장해 공동보도문에 포함됐다는 게 남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북관계와 같은 특수관계에 있어서는 이런 모호한 용어의 사용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 그 해석 문제로 논란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측은 이 용어에 무신경하다. 회담의 남측 대변인은 "실사구시.실용주의로 나가자는 뜻"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진행과정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회담 기간 중 북한의 내각 총리와 북측 단장은 연일 '체면주의'를 거론했다. 북측이 이 문구에 집착한 데 비해 남측 대표단의 대응은 너무 안이했다.

석연치 않은 대목은 적지 않다. 북측 언론의 보도에는 합의문의 '실용주의적 입장에서'라는 문구가 빠져 있다. 더구나 재일본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북측의 권호웅 단장이 체면주의를 버리자는 제안과 관련,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남북회담의 관행상 내부 사정에 따라 합의문이 다소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핵심용어의 누락은 있을 수 없다. '북측의 기술적 착오였을 것'이라는 정도의 설명으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남측의 정동영 단장과 북측의 권호웅 단장은 즉각 해명하고 잘못한 측은 사과해야 한다. 특히 남측 대표단이 북측의 '체면주의 타파=보안법 철폐'주장을 듣고도 합의해줬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이 부분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