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 이사장 선거 싸고 해묵은 대결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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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이사장을 선출하는 내년 1월의 한국 문인 협회 제22차 정기 총회는 문인들 사이의 해묵은 대결 의식이 드러나는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10년이 가깝도록 문협을 장악해온 오학영 사무국장을 비롯한 소위「4인 체제」로 알려진 현 실무진이 물러나야 한다는 축과 현상을 고수하려는 「4인」측이 맞선 것이다. 현. 실무진을 규탄하는 측은 이미 이원섭씨 (시인)를 이사장 후보로 내세웠고 「4인」측은 문단원로 김동리씨를 옹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김동리씨는「4인」측의 옹립 움직임에 대해 『지금 와서 다시 이사장직을 맡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4인」측은 『수락하지 않을 경우 투표로 당선시키는 방법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김씨의 분명한 태도 표명이 선거전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것 같다.
문협 현 실무진이 김동리씨를 옹립하려면서 내놓은 이유는 김씨를 추대하게 되면 ▲그의 문단적 덕망에 의해 대립·분산되어 있는 문인들이 통합 될 수 있고 따라서 문인 단체가 활성화하여 본래의 사명을 다하게 되며 ▲선거전을 치르지 않고 만장일치로 추대하여 불필요한 대립과 소모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측은 김씨의 옹립은 현 실무진의 현상 유지를 의한 자구책에 지나지 않으며 현 실무진의 퇴진만이 문협을 살려내는 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현 실무진이 김씨를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나서 과연 「대권」을 김씨에게 맡길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조연현씨가 문단적 입장 때문에 이사장직을 물러났을 때 현 실무진이 서정주씨를 이사장으로 추대한 후에 있었던 일들을 되살려 내고 있다.
즉 그들은 서씨가 이사장이 되어 맨 처음 한일인 상임이사지명을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서씨는 분노와 실의를 느껴 이사장 직무 수행을 거의 외면해 버렸다는것.
이들은 내년 70세가 되는 김동리씨가 문단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할수 있으려면 「4」들의 퇴진과 정관의 개정이 선행되어 명실공히 김씨가 문협을 통솔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어야하며 그렇게 되면 김씨의 이사장 추대에 뜻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73년 소위 「김동리-조연현 대회전」때 현 실무진에 의해 이사장 자리를 물러났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에는 그들에 의해 이사장에 추대 받고 있는 김씨도 지난 11월 이들이 자택을 방문했을 때 승낙 여부에 관계없이 정관의 개정과 문단적 화합을 위한 몇가지 선행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관 문제에 대해 김씨는 현대 의원의 수를 5∼6백명으로 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재의 정관은 대의원을 2백40명으로 하고 있다.
현 실무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정관은 그중 90여명이 자동적 대의원으로 되어 있어 이사장 선거가 있을 경우 그들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정관을 ▲개정하자는 측의 주장에 대해 현 실무진은 반대하고 있다. 대의원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또 다시 과열된 선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 현 실무진이 김씨 옹립에 지장이 된다면 일부의 퇴진도 생각해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어쨌거나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문인들이 스스로 아끼는 단체를 만들겠다』는 주장 아래 한국 문학 협회와 문덕수씨 (시인) 계열의 지지를 받는 이원섭씨는 이사장 선거 출마 성명을 냈다.
이에 대해 현 실무진은 김동리씨의 옹립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이씨 측은 현 실무진이 정관을 고치지 않을 경우 현 정관 아래서도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27일에 있은 문협 82년도 제4차 이사회에서는 이들 양세력의 가벼운 충돌이 있었다. 한국 문학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후보 출마자 이원섭씨의 회비 납부를 문협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이씨, 나아가서는 한국 문학 협회 회원 전체에 대한 문협 회원 자격 인정 여부와도 맥이 닿고 있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으나 더 거론되지 않고 끝났다. 앞으로 이 문제가 표면화될 경우 문협 선거는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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