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년전 정착 한때 지방장은 모두 연안이씨|충북 괴산군 괴산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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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서 버스편으로 20분거리, 성불산」 송림 사이에 연안이씨 성받이들이 처마를 맞대고 모였다.
비산4군 감물면 백양리. 마을전체 1백90여가구중 반수가 넘는 1백50여가구 7백여명이 한 할아버지의 자손들이다.
연안이씨는 당연히 이 마을의 터줏대감. 10여년전만해도 백양리일대의 산천초목이 이씨 일문의 소유였으며 자유시절에는 면장·교장·농협장·우체국장등 지방의 장자리는 몽땅 이 마을 출신 이서방들이 독차지했단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산산산」뿐인 이 산꼴에 최초로 연안이씨의 못자리를 낸 인물은 이효장. 그는 세종종∼성종대의 명신 이석형의 손자다. 이효장이 이 마을로 이주하게된 내력은 확실치않다. 지금부터 약4백년전 조정의 사화를 피해 첩첩산골로 은신, 황무지를 개척하며 자손들을 번성시켰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을뿐.
이 마을 연안이씨 일문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석형의 12대손 이문우. 그는 1천여년동안 실전되어 오던 시조 이무의 묘지석을 찾아 1백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후손들에게 전수시킨 장본인이다.
조선 순조조, 시조의 묘소가 1천여년동안 실전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온 이문우는 묘소를 찾는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 시조 이무의 옛묘소 터로 알려진 황해도 연안땅을 누볐다.
사재를 털고 남의 빚을 내어 백양리에서 천리길 연안땅을 멀다않고 두차례나 오르내린 끝에 비봉산 왕녀봉밑 은일동고분에서 「연안백이무」라고 새겨진 화강암 묘지석을 발견한것(순조21년). 현재 이 묘지석은 학계의 고증을 거쳐 연세인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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