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분투의 장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시아인들의 올림픽인 「아시안게임」(제9회)에 출전할 우리 선수단 4백 6명이 장도에 오른다. 오는 19일부터 열 닷새 동안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아시아의 스포츠강국인 일본, 중공이 선두를 다툴 것으로 보이며 우리는 종합순위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1등을 겨냥하지 않는 기묘한 전략이지만, 그나마 우리의 기량이 돋보인다.
우리 선수단의 선전분투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은 어느 대회와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대회만은 한국에 특별한 뜻이 있다. 바로 4년 후의 다음 번 대회 주최국이 우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임원진은 경기성적의 향상은 물론 대회운영의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회의 면면을 충분히 살펴 86년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밑거름이 될 경험을 쌓자는 것이다.
이념과 체제가 서로 갈등을 빚고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스포츠 축전만큼 인류의 화합을 도모하는 문화행사도 드물다. 특히 우리는 분단된 국토와 첨예화한 남북대립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나라며 그만큼 국제적 화해기운의 조성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
우리가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유치한 근본적인 동기도 바로 이 같은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결국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다함은 이 같은 목적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점에서 선수단과 임원진의 노력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
또 우리가 국제 스포츠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항상 가슴아픈 일은 북한선수들과 마주치는 일이다. 한 팀으로 나와야할 이들이 유력한 우리의 경쟁상대자로 부각되는가 하면 경기 외의 개인적인 우호접촉마저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선수만은 관인대도의 심정으로 그들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아량을 베풀어야할 것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3위 입상을 목표로 한 우리에게 주최국인 인도와 더불어 북한도 치열하게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 개 종목에선 남북한의 근접전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우되 정정당당한 스포츠정신으로 게임에 임해야 한다. 남북간의 승패는 꼭 이긴다는 정신보다 올바르게 싸우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 승패에 집착한 나머지 정치성을 배제해야할 스포츠축전에서까지 남북의 갈등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
설령 북한 쪽이 그렇게 나오더라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민족화합의 관대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할 것이다.
이 점에서 선수단의 김성집 총감독이 『그들이 설사 안 받더라도 우리는 인정 어린 미소나 여유 있는 자세를 주고 싶다』고 말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바라기는 어렵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남북간의 스포츠해빙이 이룩되고 이것이 86년과 88년의 서울무대에 까지 옮겨지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우리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 대비해 1년 반 동안의 강도 있는 훈련을 쌓았다.
훈련은 그것이 대회장에서 성과가 나타날 때만 비로소 빛을 본다. 젊은이들 자신의 의지는 물론, 온 국민의 여망이 담긴 이 훈련을 물거품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선수단과 임원진의 성실한 노력이 거듭 요청된다.
다시 한번 선수단의 장도를 축하하며 이번 대회가 한국스포츠의 질적 향상은 물론 다음 번 주최국으로서의 역량축적과 남북간 스포츠융화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